훈훈한 인정을 주고받으며 이웃사랑의 기폭제 역할을 했던 ‘사랑의 쌀독’이 세간에 등장한 지 3년 만에 바닥을 보이고 있다. 나들이 가족이나 청소년들이 쌀을 멋대로 퍼가면서 후원자들이 손길을 뚝 끊었고, 관리기관이 이용자 명단까지 작성해 감시하는 ‘불신(不信)의 독’으로 전락하고 있다.
3년째 ‘나눔의 쌀 뒤주’를 운영하고 있는 전남 목포 옥암동사무소에는 자가용을 몰고 온 운전자, 나들이 나온 일가족, 담뱃값을 마련하려는 청소년들이 드나들고 있다. 이에 따라 동사무소 측은 이달부터 월ㆍ수ㆍ금 격일제로 오후 2∼3시에만 쌀독을 운영하고 쌀을 가져가는 이웃의 명단을 작성, 후원자에게 보여주도록 하고 있다.
2005년 3월 높이 1m 둘레 2.5m의 대형 쌀독을 설치, 눈길을 끌었던 부산 금정구 남산동사무소도 ‘양심쌀독’이 특정인의 전유물로 전락하자 주민들을 직접 골라 세대마다 매달 10∼30㎏의 쌀을 무상 공급하는 직접지원 형태로 바꿔 버렸다. 다만 동사무소가 명맥을 잇기 위해 부정기적으로 쌀독을 채울 뿐이다.
대전은 2005년 5월 민간단체인 ‘복지만두레’가 중구 부사동사무소에 ‘나눔의 쌀독’을 설치한 후 시내 80개 동사무소 전체로 확산, 한때 ‘쌀독 인심’이 가장 후한 도시였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시 지원금이 끊긴 ‘복지만두레’가 쌀 지원을 대폭 줄이면서 당초 한달에 20㎏짜리 20∼30포가 넘치던 쌀독이 4, 5포 정도만 채워지고, 최근에는 이마저 없어졌다.
대전시 복지정책과 최일권(47ㆍ7급ㆍ복지만두레 담당)씨는 “사랑의 쌀독이 처음 등장했을 때 익명의 후원자와 수혜자 모두 흐뭇해 했는데 정말 안타깝다”고 말했다.
경북 구미시 도량ㆍ송정ㆍ선주ㆍ원남동 등 8개 지역 동사무소에도 지난해 6월 사랑의 쌀독이 설치됐으나 대부분 지난 연말부터 쌀이 떨어졌고, 채워넣는 사람도 없다. 경기 남양주시 평내동사무소는 지난해 6월 쌀 기부가 급격히 줄어들자 ‘사랑의 쌀독 서포터즈’를 만들어 겨우 운영하고 있을 정도이다.
한편 2005년말 ‘사랑의 쌀독’에 이어 대구 중구 남산3동사무소에 등장했던 ‘사랑의 연탄창고’는 두 해 동안 1만3,000여장의 연탄이 지원됐으나 지난해 말에는 후원자가 뚝 끊기면서 창고가 폐쇄됐다.
대구 우리복지시민연합 은재식(43) 사무처장은 “사랑의 쌀독이 시들해진 것은 연말이나 이슈가 있을 때만 반짝하는 땜질식 기부와 나눔 문화 때문”이라며 “3년전 초심으로 돌아가 사랑의 쌀독을 다시 채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구=전준호기자 jhjun@hk.co.kr 목포=박경우기자 gw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