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의료보험은 모든 국민이 가입자이고, 개인이 내는 건강보험료에 상관없이 똑같은 의료서비스를 받는 사회보장제도다.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매우 싼 보험료를 내면서 선진국 수준의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기 때문에 장점이 많다. 유럽이나 캐나다에서는 한 달 이상 기다려야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고난도 의술을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병원이 빠르고 정확하게 시술이 시행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더욱이 적지않은 병원들이 더 많은 인건비를 지출하면서 친절하고 알기 쉽게 설명하는 병원을 표방하고 있다.
반면 의료행위가 대부분 의료법이 정한 규정에 따라 시행되는 등 의료행위를 지나치게 규제함으로써 새로운 의료기술 도입이나 획기적인 신약의 보험적용 등이 신속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면도 있다.
건강보험에서 의료비는 ‘급여’와 ‘비급여’로 구분된다. 비급여는 ‘질병, 부상의 치료 목적이 아니거나 업무나 일상생활에 지장 없는 질환, 기타 보험급여 원리에 부합되지 아니하는 사항’으로 그 범위가 규정돼 있다. 예컨대 성형수술이나 1인실 같은 고급 병실 등이 비급여 항목이다.
또한 ‘기타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하는 사항’까지만 임의로 비급여 대상이 되므로 현행 요양급여기준에 명시되지 않은 신기술이나 신약 사용은 보건복지부장관이 인정하지 않을 경우엔 급여 대상으로도, 비급여 대상으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임의 비급여’ 진료가 된다. 이 경우 환자가 이의신청을 하면 진료비를 병원이 환불해야 한다.
특히 환자가 사망한 경우, 환자 생존시 환자가 강력히 원해 임의 비급여임을 설명해 주고 동의를 얻어 투약한 신약의 진료비를 환자가 사망한 뒤 가족이 이의신청해 환불하고 있다. 심지어 제3자의 진료비 지원으로 환자 본인이 지불하지 않은 진료비까지 환불을 요청하는 실정이다.
새로운 의료기술이나 신약 사용이 환자와 의사 간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불신을 조장한다면 암과 같은 질환 치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고가의 의료행위가 보험재정 압박요인이 된다면 과감히 전액 본인부담으로 바꿔 숨통을 열어주어야 한다. 환자를 낫게 하기 위해 새로운 의료기술이나 신약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환불 걱정 때문에 치료를 못하는 의사나, 일단 사용에 동의한 뒤 안 되면 나중에 이의 신청하는 환자가 공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의대 학생교육의 주요 부분 중 하나가 환자-의사 관계다. 상호 신뢰가 질병 치료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조선 7대 임금인 세조는 평소 병치레가 잦아 다양한 의사를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의사를 ‘팔의(八醫ㆍ여덟 종류의 의사)’로 나눴다. 세조는 이 가운데 환자 마음을 편히 다스려 질병을 치료하는 ‘심의(心醫ㆍ마음의 의사)’를 으뜸으로 꼽았다. 모든 의사는 마음의 의사가 돼야 한다.
하지만 의료행정 규제로 인해 이런 마음이 계속 상처를 받는다면 의료 선진화의 길은 점점 멀어질 것이다. 따라서 정책당국이 적극 나서 새로운 의료기술이나 신약 사용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
지금 이 글을 우울한 마음으로 쓰고 있다. 조혈모세포이식 후 나타난 이식편대숙주반응이라는 부작용을 치료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두 명의 환자에게 임의 비급여 신약을 투여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급여가 되는 다른 약은 이 부작용을 해결할 수 없어서다.
구홍회ㆍ삼성서울병원 암센터 조혈모세포이식센터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