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하버드대에서 동양불교 전공교수 모집공고를 냈는데, 대상이 한국불교 전공자 또는 중국불교 전공자였어요. 20년 전만 해도 한국불교라는 연구영역조차 없었던 사실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지요.”
지난해초 아시아학회(AAS) 회장으로 선임돼 다음달 4년 간의 정식임기를 시작하는 로버트 버스웰(55ㆍ아시아 언어문화학) 교수는 본지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높아진 한국학의 위상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1941년 창립이래 6,000여명의 회원을 거느린 세계 최대 규모의 아시아연구학회에 한국학(한국불교학) 전공자가 회장에 된 것은 그가 처음이다.
미국내 웬만한 대학마다 연구소가 개설돼 있는 일본학이나 중국학에 비하면 한국학의 비중이 미미한 것은 사실. 그러나 한국학 연구자가 아시아학회 회장으로 선임된 것은 한국학이 점차 아시아학의 본류로 진입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요즘 미국 대학의 중국학이나 일본학연구소 연구자중 최소한 10~20%는 한국학 전문가일 것”이라고 추산한 그는 “미국에서 한국역사와 문학연구자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으며 역량이 축적되면, 한국경제학, 한국정치학 등 사회과학분야의 연구로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고(故) 에드워드 와그너 하버드대 교수, 고(故) 짐 팔레 워싱턴대 교수 등 한국학 연구 1세대 학자들이 서구학계에 한국학을 소개하는 역할을 했다면, 2세대 격인 버스웰 교수는 한국학연구가 주류학계에 학문적 영향을 줄 수 있도록 내실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런 맥락에서 자신의 전공분야인 한국불교학에 대한 기대는 자뭇 크다.
그는 “기독교 구원론의 과제인 ‘구원을 찰나에 얻는 것인지, 점진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인지에 관한 최근의 논쟁은 선종 전통이 강했던 한국불교의 정치한 해석에 빚지고 있다”며 “깨침과 닦음에 관한 체계화된 논리를 전개했던 지눌(知訥)의 돈오점수(頓悟漸修) 사상은 아시아불교 연구자들이 반드시 섭렵해야 할 이론으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아쉬운 점은 중국학이나 일본학에 비해 전근대 분야 한국학 연구가 침체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이는 연구자들의 한문독해능력의 부족에서 기인하는데 그는 미국내 주요 학술출판사를 통한 우수한 번역서의 간행을 대안으로 꼽는다.
현재 5년 계획으로 원효(元曉)의 선집, 지눌(知訥)의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 번역작업을 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와 함께 한국불교의 역사, 인물, 현황을 집대성한 영문판 한국불교대사전(가칭)의 간행도 총지휘하고 있다.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
버스웰 교수는 1974년 전남 순천의 송광사에서 구산(1901~1983) 스님의 제자로 5년간 수행하면서 한국불교를 접했고, 환속한 뒤 ‘금강삼매경론의 한국적기원’ 이란 주제의 논문으로 버클리대에서 박사학위(1985)를 받았다.
이후 중국ㆍ한국불교의 세계적 권위자로 UCLA에서 강의를 맡아왔으며 1993년부터 2001년까지 이 대학 한국학연구센터 이사로 재직하며 UCLA를 미국내 한국학의 요람으로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는 한국학을 전공한 아시아학회 회장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한국학자를 연례총회에 많이 오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한국학에 관심 있는 각국의 정부부처와 기관 관계자들의 참석을 유도해 한국학 위상 제고에 힘쓰고 싶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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