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구스타프 융 지음ㆍ조성기 옮김 / 김영사 발행ㆍ660쪽ㆍ2만3,000원
“나에게 인생은 뿌리를 통하여 살아가는 식물처럼 생각되었다. 식물의 고유한 삶은 뿌리 속에 감추어져 보이지 않는다. 지상에 드러나 보이는 부분은 단지 여름 동안만 버틴다.
그러다가 시들고 마는데 하루살이 같이 덧없는 현상이다. 하지만 나는 영원한 변화 속에서도 살아서 존속하는 그 무언가에 대한 감각을 결코 잃어버린 적이 없다. 땅속 뿌리는 여전히 남아있다.”
카를 구스타브 융(1875~1961)은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와 더불어 인간행동을 설명하는 통로로 무의식의 존재에 주목한 인물이다.
그는 개인의 경험에 기초하고 있는 ‘개인무의식’으로 인간행동을 설명한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인류보편의 무의식, 그의 육성을 빌자면 ‘땅 속 뿌리’를 파헤쳤다. 20세기 종교학, 민속학, 민담학, 예술과 문학 등 인접학문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이 ‘집단 무의식’ 개념은 어떻게 착안됐을까?
융이 세상을 뜬 이듬해인 1962년 발표된 자서전 <기억, 꿈, 사상> 은 집단무의식, 아니마(anima)와 아니무스(animus), 원형(archetype) 등 20세기 정신분석학연구의 근간이 된 주요 개념들이 어떤 배경으로 탄생했는지, 그 개념에 도달하기 위해 융이 어떤 내적 고투를 치루었는지를 보여준다. 기억,>
집단무의식 개념은 1909년 융이 그의 스승 프로이트와 함께한 7주간의 미국여행에서 착상됐다.
고풍스러운 집의 지하통로에서 발견된 반쯤 삭은 두개골에 관한 꿈의 해석을 놓고서 두 사람의 의견이 갈렸는데, 두개골을 죽음에 대한 욕망으로 해석한 프로이트와 달리, 융은 그것을 의식이 다다를 수 없는 원시인의 세계로 파악했다.
당시 스승 앞에서 대놓고 반박하지 못했지만 자서전에서 융은 “꿈을 ‘가면’으로 이해하는 프로이트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었다. 나에겐 꿈이란 자연의 일부로서 속이려는 의도를 품고 있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과학적 실증주의에 매몰돼있었던 프로이트의 연구에 종교와 신화의 외투가 덧입혀지면서 정신분석학이 한 단계 더 도약하는 풍경을, 스승을 뛰어넘기 위해 고통스러워야했던 대가의 목소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상처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었던 융의 고독한 기질이 보여주듯, 융은 방랑, 회의, 의심으로 점철됐던 자신의 인생을 털어놓는 일을 저어했다고 한다.
그러나 죽기 5년 전부터 비서인 아니엘라 야페와 나눈 대담을 토대로 완성된 이 자서전은 타자의 내면을 탐구하는 데 일생을 바쳤던 한 대가의 내적 체험을 샅샅히 해부하고 있다. 그 생생함은 4살 무렵 자신을 돌봐주던 하녀의 머리와 피부빛깔까지 기억하고 있는 융의 놀랄만한 기억력과 관찰력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융의 분석심리학에 기초한 ‘삼위일체에 대한 심리학적 고찰’로 학위까지 받았던 소설가 조성기는 암시와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찬 융의 문장을 편안한 한국어로 옮겨주고 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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