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및 수도권 지역의 보육원생 200여명이 14일 오후 서울시립미술관을 찾았다. ‘불멸의 화가-반 고흐’전을 관람하기 위해서다. 경생원, 선덕원, 마자렐로센터, 시온원 등 11곳의 보육원에서 ‘그림 마실’을 나온 이들은 문화 향유 기회가 적은 보육원생들을 위해 한국일보사와 서울시립미술관이 2월말까지 실시하는 보육원생 무료 관람 행사의 첫 손님들.
혹한에 상기된 얼굴로 전시장에 들어선 보육원 아이들은 벽면에 쓰인 작가 설명과 작품 제목 등을 꼼꼼히 챙겨 읽으며 한 점 한 점 세심하게 그림을 감상했다. 책에서만 본 반 고흐의 작품을 직접 보는 게 믿기지 않는지 “이게 전부 반 고흐가 그린 그림이냐”고 묻는 어린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미술관 나들이가 흔치 않다 보니 어젯밤이 설렌 친구들도 적잖았다. 최하영(16)ㆍ예영(14) 자매는 “어제 서대문도서관에 가서 반 고흐에 관한 책을 미리 읽고 왔다”며 “반 고흐와 동생 테오가 우리처럼 사이가 참 좋았던 게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자화상 앞에선 하영양은 “영어 교과서에서 반 고흐는 오른쪽보다 왼쪽 얼굴이 더 잘 생겨서 왼쪽을 자주 그렸다는 얘기를 읽었는데 정말 그렇다”며 신기해 했고, 예영양은 “이렇게 재능이 많은 반 고흐가 재능을 다 발휘하지도 못하고 죽은 것 같다”며 아쉬워 했다.
미술관에 처음 와본다는 나주희(17)양은 반 고흐의 비극적 생애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반 고흐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형이 죽은 날 태어나서 형과 똑같은 이름을 물려받았다고 하더라고요. 부모님으로부터 빈센트라는 죽은 형의 이름을 물려받은 반 고흐가 너무 불쌍해요.” 나양은 “반 고흐의 초상화는 사람 얼굴이 동물처럼 보이는데, 그건 내면의 고통을 표출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보육원에서 그림 잘 그리기로 유명한 김서라(14)양은 미술교사가 꿈인 학생답게 “데생을 틀림없이 잘 하는 화가라 그림의 느낌이 잘 살아있다”는 전문가 못잖은 촌평을 내놨다. 색상이 밝고 예쁜 ’꽃이 핀 밤나무’가 가장 마음에 든다는 김양은 “주변에 반 고흐전을 봤다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직접 와서 보니 정말 좋은 것 같다”며 “다른 친구들에게도 꼭 추천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보육원 송죽원의 인솔교사로 전시장을 찾은 사회복지사 윤정희(25)씨는 “연말을 제외하면 아이들에게 제공되는 문화 행사가 거의 없다”며 “문화 체험의 기회가 적은 보육원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보육원생들을 위해 전세 버스를 제공한 GS칼텍스는 관람 행사 후 반 고흐 꽃가방과 소도록, 볼펜 등을 선물로 증정했다. 보육원생 무료관람 초청행사 2월말까지 서울 및 수도권 지역 50개 보육원의 2,000여명을 대상으로 매주 화, 목, 금요일 실시된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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