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변은 원래 좋은 말이다. "군자는 표변한다"는 말도 있지만, 뚜렷하고 아름다운 표범의 무늬처럼 사람의 성품이 갑자기 선하게 변하는 게 표변이다. 그러나 지금은 나쁜 뜻으로만 쓰이고 있다. 지조 소신 원칙도 없고 쓸개도 없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는 사람을 비난하는 데 주로 쓰이는 말이 됐다.
개인은 삶의 각 단계에서 어떤 의미로든 표변하게 되고 표변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나라를 기준으로 보면 지금과 같은 정권교체기가 표변의 시기일 것이다.
표변의 전제는 자기부정이다. 변증법적 발전의 논리에 따르면 사물이나 정신은 자기모순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먼저 자기를 부정하고 상대적 대립 자체를 부정해 한층 높은 종합 통일로 나아가야 한다.
■ 정권교체로 달라진 정부 부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정부업무 청취를 계기로 공무원과 각 부처의 자기부정이 도마에 올랐다. 특히 국정홍보처의 '영혼이 없는 공무원'이라는 말이 자기부정의 대표적 진술로 부각됐다.
한반도 대운하가 경제성이 없다고 단언했던 건교부는 이명박 정부 기간에 완공하려면 6월 국회에서 특별법을 처리해야 한다고 표변했다. 금산분리 원칙, 출자총액 제한제에 대한 재경부 금감위 공정거래위의 입장 변경, 신문법에 대한 문화관광부의 태도 변화도 눈에 띈다.
그것은 새 정부에 대한 '귀순의사' 표명이거나 지금 정부에 몸 담은 사람들의 알리바이 만들기일 수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업무보고 양식 중 하나로 '당선인 공약 실천계획'을 요구했기 때문에 자기부정이 없이는 그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우스운 행태이지만 그들로서는 시류에 맞출 수밖에 없을 것이다. 표변이라는 말처럼 聖之時者(성지시자)라는 말도 달리 쓰이고 있다.
원래는 때에 맞게 잘 행동했던 공자를 칭찬한 말인데, 요즘은 "성인도 시류에 따르는데 하물며 우리가…"라는 뜻으로 왕왕 쓰이고 있다. 대통령과 그의 철학에 충실해야 하는 공무원들은 노무현 행정부의 것들이 이념과 지향이 다른 이명박 행정부까지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만, 요구된 것이든 아니든 자기부정에는 정확한 상황 파악과 앞을 내다보는 능력이 바탕이 돼야 한다. 그런 자아비판은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국가발전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지난 5년 북한에 끌려 다닌다는 인상이 많았고 평화와 안보의 진전도 만족스럽지 못했다(통일부),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해 한미 간 사전 협의가 충분치 않았다(외교부), 참여정부의 정부 혁신은 국민 체감도가 낮고 균형발전 업무도 효율적 추진에 한계가 있다(행정자치부)….
그러나 자기부정과 표변이 가장 필요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그 주변 사람들이다. 이 당선인은 국가의 수석 공무원이다. 최초의 CEO출신 대통령이 되는 그는 돈을 벌어본 경험을 바탕으로 나라의 부를 키울 기회를 얻었다. 개인적 가치와 국가적 가치의 순도 높은 합일과 일치에 앞장서야 한다.
나라의 최고 직위를 잡았다기보다 그런 일치를 이루기 위한 최고의 기회를 잡은 것이라고 생각해야 마땅하다. 이 당선인과 그 주변인사들은 공개념으로 새로 무장해야 한다.
대선기간에 부정직ㆍ부도덕하다고 많은 비난과 의심을 받아온 이 당선인은 어제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에 따라 BBK특검 수사를 받게 됐다. 이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협조해 수사가 무리없이 마무리되게 해야 할 것이다.
■ 이명박 당선인부터 '표변'을
노무현 대통령은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한다는 비판을 흔히 들었다. 이와 반대로 이명박 대통령은 우회전 깜빡이를 켜고 좌회전할지 모른다고 예측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수도 있다. 필요하면 그렇게 해야 한다. 다만 그 목적과 방법이 이해와 공감을 얻어야 한다. 자기부정을 통한 소통의 문제다.
이명박 진영의 사람들 중 한 명이 보낸 연하장에 解弦更張(해현경장)이라는 말이 있었다. 끈을 고쳐 매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뜻이다. 새로운 음악을 연주하려면 그 말처럼 현을 고쳐 매고, 조율도 새로 해야 한다. 그게 바로 자기부정이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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