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의 나라였던 조선은 효를 숭상하고 제사를 중시했지만 묘제에 관한 법적 규정은 매우 간략했다. 품계에 따라 묘역의 크기를 제한하는 규정이 있지만 그 외에는 명확한 규정과 인식이 없었다. 무덤 앞의 석물이나 비석 등의 조성은 유교적 신분질서에 따른 사회적 관습에 따라 이루어졌다.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신광섭)이 전국에 있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무덤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 결과를 DVD와 책에 담은 조선시대 묘제(墓制) 자료집 <죽은 자, 또한 산 자의 공감, 무덤> 을 출간했다. 조선시대 사대부묘 225기, 육지와 다른 제주도의 묘 33기, 왕실무덤 47기 등 총 305기의 무덤에 대한 조사 내용과 1만1,000장의 이미지 등 방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죽은>
비석은 왜 세웠을까. 광해군 때 편찬한 <동국신속삼강행실도> 에는 고려 공민왕 때의 효자로 유명한 윤귀생(尹龜生)의 고사가 실려있는데, 주문공의 <가례(嘉禮)> 에 따라 제(祭)를 지내며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묘에 비를 세워 기일(忌日)을 기록하고, 제실 옆의 비에는 고조(高祖) 이하 선조들의 기일을 후손들이 잊지 않도록 비석을 세웠다는 내용이 기록돼있어 그 실질적인 이유를 짐작케한다. 가례(嘉禮)> 동국신속삼강행실도>
이 자료집은 305기의 무덤의 입지(立地)와 무덤 구성물 배치, 좌향(坐向), 봉분, 비문 등과 동자석(童子石), 석수(石獸), 상석(床石) 혼유석(魂遊石) 등 각종 석물에 대한 기본정보, 피장자 정보 등 무덤에 대한 종합적인 내용을 담았다.
염경화 학예연구사는 “그 동안 땅밑 무덤에 대한 보고서는 많이 나왔지만 땅위에 대해서는 자료가 부족했다”면서 “이 자료가 조선시대 상장례 문화 연구의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자료집은 비매품으로 도서관, 박물관 등 공공기관에만 배포되며 일반 이용자는 국립민속박물관 홈페이지(http://www.nfm.go.kr)를 통해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남경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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