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파구인가, 자충수인가. 9일 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이 입국하면서, 새 주인을 기다리는 외환은행의 행로에 금융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검찰의 그레이켄 회장 소환 수사와 법원 판결 결과에 따라 외환은행의 운명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일단 그레이켄 회장의 입국을 둘러싸고 금융권의 첫 반응은 론스타의 승리가 임박한 것 아니냐는 분위기다. 외환은행을 HSBC에 안기고 천문학적인 차익을 챙겨 한국을 떠나려는 론스타의 최종 목표에 대해 새 정부가 암묵적 승인을 약속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다.
현재로선 가장 설득력 있는 시나리오다. 참여정부에서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을 인수한 뒤 되팔아 막대한 차익을 챙겨 떠나는 외국자본에 대한 반감 등으로 매각일정이 늦춰졌지만, 친 기업 성향의 차기 정부는 입장이 다를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국가경쟁력강화특위 위원장으로 임명된 데이비드 엘든은 론스타와 외환은행 인수 계약을 체결한 영국계 은행 HSBC의 아태지역 회장 출신이다. 엘든 위원장은 지난 6일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익금은 본국 송환이 보장돼야 한다”며 론스타를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때문에 그레이켄 회장의 입국은 현재 진행 중인 외환은행 헐값 매각사건과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 1심 재판을 빨리 종결 짓고, 매각일정을 맞추려는 의도일 가능성이 높다. 1심 재판 이후 바로 금융당국의 승인을 얻어 HSBC에 외환은행을 매각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HSBC는 올해 4월 말까지 한국정부의 인수 승인을 받는 조건으로 론스타와 계약을 했다.
그러나 그레이켄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와 맞물려 이런 의도가 빗나갈 가능성도 있다. 아무리 새 정부의 지원을 받는다 해도, 검찰 수사와 법원 판결은 정부 의도와는 별개이기 때문이다. 그레이켄 회장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매각 사건과 관련해 기소중지 처분을,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선 참고인 중지 처분을 받은 상태다.
11일 재판에 증인으로 참여할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은 참고인으로 별 문제가 안되지만,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이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외환은행 헐값매각 사건에서는 ‘잠재적 피의자’인 셈이다. 검찰은 “그레이켄 회장에 대한 조사는 불가피하며 그가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한 뒤에 검찰에 나와 조사를 받도록 변호인과 협의를 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만약 그레이켄 회장이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정부에 헐값으로 팔도록 로비를 벌인 혐의를 확인하면 그는 피고인으로 한국 법정에 서야 한다. 또 법원에서 혐의가 확정될 경우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는 원인무효가 될 수 있고, 향후 외환은행 매각일정은 올스톱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원인무효가 되더라도 외환은행은 타 금융회사에 매각돼 결국 다른 주인을 찾게 되겠지만, 대법원 확정판결까지는 1년 이상 걸린다. 즉, HSBC의 외환은행 인수는 물 건너 가게 되고, 인수의사가 있는 하나은행 등 새로운 매입자를 찾아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입국이 오히려 자충수가 되는 시나리오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재판이 끝나기 전에는 매각승인을 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인수위에 전달했고, 인수위도 이해하는 분위기”라며 차기 정부의 입장 변화 가능성에 대해 조심스러워 하는 반응을 보였다. 론스타 문제에 대한 차기 정부의 본심은 그레이켄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와 헐값매각 사건 1심 재판이 끝나는 시점에야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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