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사 알을 깨고 나오는 새와 같다. 아니, 새가 깨고 나간 알 껍질 같기도 하다. 어쨌든 전시장 초입에 놓인 ‘초토(焦土)’를 보고 있노라면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소설 <데미안> 의 구절이 저절로 머리 속에 인화된다. 1968년도 작품이 오늘날의 작품처럼 새롭다. 데미안>
추상조각가 박석원(66)의 45년 조각인생을 돌아보는 회고전 ‘積+意(적+의)’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해 9월 홍익대 미대에서 정년 퇴임한 것을 기념하는 전시다. 전쟁의 상처를 치열하게 빚어낸 ‘초토’로 1968년 ‘국전’(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서 국회의장상을 받은 그는 조각분야 최연소 추천작가로 당대 미술계의 이슈가 됐다.
구상이 지배적이던 1960년대 조각은 무릇 이러해야 한다는 통념을 전복하며 ‘앙팡 테리블’로 등장한 그가 한국 추상조각을 지탱해온 지 45년이 지났다.
전시에 나온 45점의 추상조각은 작가의 45년 이력을 두루 망라한다. 모색기의 작품부터 ‘분절의 시기’라 불리는 74년부터 89년까지의 작품, ‘결합의 시기’로 분류되는 90년대 이후 근작까지 작가의 작품세계를 응축해 보여준다. 돌과 철이라는 육중한 소재를 주로 사용하면서도 작품의 몸놀림은 한결같이 사뿐하다.
분절의 시기를 대표하는 ‘적(積)’ 시리즈는 ‘분절구조’를 방법론으로 삼아 다양한 매체들을 절단하고 절단된 각 부분을 다시 쌓는 방식으로 이뤄진 작업들이다. 불필요한 잔재들을 소거함으로써 재료 본연의 물성을 돋을새김하는 이 작업은 자연의 몸짓으로서의 사물에 집착하는 작가의 의지를 보여준다. 절단면들을 이은 접합부의 곡선미, 마천석과 화강암의 표면에서 홀로 반짝이는 결정체들, 오목면과 볼록면의 사이에서 드러나는 골의 음영이 서정적이고도 단아하다.
90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적의(積意)’ 시리즈는 나누고 쌓고 조합하는 재구성 과정에 인간의 심의(心意)를 더한 작업들이다. 자르고 쌓는 방법론 위에 인간 문화 역사와 관련된 요인들을 불러들여 구조를 연성화하는 ‘결합’의 논리를 덧대었다. 화강석과 브론즈, 흙과 나무 등 다양한 재료들을 자르고 쌓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반복율의 리듬은 삶의 호흡과 닮아 아름답다.
최근 돌 조각은 국내 조각계에서 홀대 받는 추세지만, 작가는 다양한 소재 중에서도 특히 돌을 편애한다. “돌은 세월의 흐름을 끌어안고 있어 다루기는 어렵지만 진정한 재료”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전시가 끝나면 제주도 현무암으로 새로운 작품들을 시작해 볼 요량”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27일까지. (02)720-1020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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