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빈 수레였다. 때마다 수술대에 올랐고, 때마다 요란했지만 결론은 항상 미봉책이었다. 부처간, 기관간 밥 그릇 싸움의 결과였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더구나 이번엔 정부조직 개편이라는 큰 틀에 묻혀 변변히 주목조차 받지 못했다. 금융감독기구 개편을 두고 하는 소리다. 결국 이번에도 종양 제거 없는 수술로 마무리될 전망이다. “현실적으로 방법이 없다”는 현실론의 승리다. 하지만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어정쩡한 금융감독기구 개편은 언제든 다시 불거질 논란의 소지를 안게 됐다.
13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따르면 금명간 발표될 정부조직 개편에서 금융정책 및 감독기구는 ‘금융부(또는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으로 이원화하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질 게 확실시된다. 금융정책을 총괄하고 법령 제ㆍ개정권을 갖는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과 금융회사 인ㆍ허가 및 제재권을 갖는 금융감독위원회를 통합하되, 공적민간기구인 금융감독원은 현재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이는 금융감독기구 통합이 아니라 부처 내 금융정책과 감독 기능의 통합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본질을 외면했다는 지적이 많다. 외형상으론 ‘재경부 금정국 + 금감위’의 단순화 모양새를 갖췄지만, 정작 문제의 핵심인 감독기구의 불편한 동거(금감위-금감원)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기 때문이다. “1,700명의 금감원 직원을 공무원화하기가 쉽지 않다” “재경부나 금감위 공무원을 민간으로 전락시킬 수는 없다”는 현실론에 기댄 탓이다.
힘의 균형추는 통합 정부부처인 금융부(또는 금융위원회)로 대폭 이동하겠지만, 1,700명의 직원을 가진 거대 공적민간기구인 금융감독원과의 크고 작은 갈등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금융회사에 대한 이중 규제, 이중 간섭의 부작용은 다시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금융정책과 감독 기능의 통합으로 관치 금융의 폐해가 더 극성을 부릴 가능성이 크다.
최근 민간금융위원회 회의에서 고동원 건국대 법학과 교수는 “금융정책과 감독의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며 “금융감독은 정치적 고려보다는 금융회사 업무가 어떻게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와 같은 모습의 금융정책 및 금융감독 기구는 외환위기에 대한 반성의 산물이었다. 한국은행과 재정경제원 산하의 은행ㆍ보험ㆍ증권감독원 등 금융감독기구를 통합해 공적민간기구인 금융감독원을 설립함으로써 정치적인 독립성을 부여하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장관급인 금감위원장이 민간기구 수장(금감위원장)을 겸임하고, 금감위를 보좌하는 사무국이 비대해지면서 현재의 기형적인 금융감독기구로 변질됐다.
금융계 고위 인사는 “금융감독의 효율화를 위해서는 정부 부처가 됐든 공적민간기구가 됐든 통합 감독기구를 출범시키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며 “이번에도 제대로 손을 대지 못한다면, 다시 다음 정부에 공이 넘어갈 가능성이 짙다”고 우려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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