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에 미국발(發) 먹구름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한줄기 햇살 같은 호재도 나타나도 이 거대한 먹구름에 힘을 잃는 형국이다. 특히 이번 주 줄줄이 대기중인 지뢰밭성 재료들은 투자심리를 더욱 움츠러들게 하고 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떨어지면 사라”고 저가매수를 권하던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슬그머니 “당분간은 기다리라”는 말로 바뀌는 분위기다.
주말 뉴욕증시, 또 급락
11일(현지시간) 뉴욕 증시는 2% 가까이 떨어졌다. 전날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금리인하 시사발언의 ‘약발’도 하루를 가지 못했다. 다우존스(-1.92%) 나스닥(-1.95%) S&P500(-1.36%) 지수 등 모두 추풍낙엽 신세였다. 올해 들어서만 다우가 5%, 나스닥이 8% 급락한 것을 비롯해 지난해 여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불거진 이후 주요 지수가 3주 연속 하락한 것은 처음이다.
원인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경기침체 우려다. 메릴린치가 서브프라임 사태 여파로 예상(120억 달러)보다 크게 많은 150억 달러를 상각할 것이라는 보도와 소비 경기를 대변하는 신용카드사인 아메리칸 익스프레스가 카드대금 연체와 부실대출 결손처리를 위해 4억4,000만 달러를 상각하고 순이익 전망치도 하향 조정하면서 불안감을 키웠다. 부유층 소비를 반영하는 보석업체 티파니도 연말 매출 부진을 이유로 주당순이익 전망치를 낮춰 소비 위축에 대한 우려를 더했다. 파산설에 휩싸였던 모기지 업체 컨트리와이드 파이낸셜을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40억 달러에 인수키로 합의했다고 밝혔으나 소용이 없었다.
이번주도 지뢰밭
이번 주는 경기침체 우려를 더욱 키울 수 있는 악재성 발표가 줄줄이 예고돼 있다.
15일 씨티그룹을 시작으로 16일 JP모건체이스, 17일 메릴린치와 위성턴 뮤추얼 등 순으로 이뤄지는 금융회사들의 4분기 실적발표는 서브프라임 관련 손실 규모가 실제 얼마냐가 관심이다. 인텔(15일)과 IBM(17일)의 실적은 최근 추락을 거듭 중인 기술주의 향방을 가늠할 잣대로 꼽힌다. 다국적기업 GE(18일) 실적은 세계경제의 흐름을 드러낼 것이다.
물가, 산업동향, 주택경기, 소비심리를 파악할 수 있는 경제지표도 관심이다. 지난해 12월 생산자물가지수(PPIㆍ15일)와 소비자물가지수(CPIㆍ16일)가 높게 나올 경우 인플레 부담을 높여 금리인하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FRB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당분간 주식은 사지 마라?
전문가들의 전망도 갈수록 신중해지고 있다. 미국이나 전년동기 대비 높게 나타나 유일한 호재로 여겨지는 이번 주 국내 기업들의 4분기 실적발표 역시 ‘이미 반영돼 있다’‘영향력이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주류를 이룬다. 여기에 올해 들어 8거래일간 1조8,000억원 어치나 팔아치운 외국인 매도세나 프로그램 매매도 당분간 호전되기 어려워 보인다.
지난 주까지 1,800선이면 저가 매수하라는 증권사들의 추천은 자취를 감췄다. 우리투자ㆍ유진투자ㆍ삼성증권 등은 1,750선 전후에서 저가매수를 권하고 나섰지만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다.
반면 한화ㆍ메리츠증권 등은 당분간 대응을 자제할 것을 주문했다. 민상일 한화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변수에 민감한 외국인들의 시각이 단기간에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번 주에도 적극적 시장 대응은 어려운 상황”이라고 조언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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