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년 새해 아침 '비운의 챔프' 최요삼 선수가 자신의 장기를 기증해 장기기증 인식 확산의 불씨를 지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1990년 1월 필자가 교통사고로 뇌사한 40세 남성으로부터 신장을 적출해 만성 신부전증 환자 2명에게 이식한 것이 살인죄에 해당된다고 신문에 기사화된 적이 있다.
경찰과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지만 결국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황당한 일이지만 당시 뇌사자의 장기이식법이 없었고 일반인의 뇌사자 인식이 희박한 상황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필자는 신문 지면에서 '살인 의사'로 취급됐다.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많은 장기 기능부전증 환자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거나 삶에 많은 제약을 가져 정상 생활이 어렵다. 장기기증은 가족이나 뇌사자에게서 받아야 하는데 가능하면 가족 간 장기이식이 최선이지만 장기기증 거부감에 따른 가족 갈등이 문제가 되기도 하고, 뇌사자가 부족해 중국 등 해외에서 원정이식하기도 한다.
3년 전 중국 톈진의 한 병원을 방문했을 때 장기이식을 받으려고 줄지어 서 있는 한국 환자들이 너무 많아 충격을 받은 적도 있다.
국내 뇌사자가 서구에 비해 결코 적지 않은데 장기기증이 실제로 이뤄지는 것은 서구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장기이식 수술을 하는 의사로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1999년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2000년부터 국립의료원에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KONOS)가 생겨 장기이식 관리를 시작하면서 생체장기 뿐만 아니라 뇌사자의 장기이식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그러나 법이 장기 매매에 의한 생체이식을 중심으로 만들어져 이와 전혀 관련없는 뇌사자의 장기이식에는 제약이 많기 때문에 1999년에 160여명이었던 국내 뇌사자의 장기기증이 이듬해 곧바로 40여명으로 크게 줄었다.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뇌사자가 아닌 환자를 오진해 수술하면 사형에 처하는 규정이 있는가하면, 뇌사자 발생 시 긴급히 장기를 기증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밤늦게 닫혀있는 관공서 문을 두드려 가족임을 서류로 밝혀야 하는 등 복잡한 절차로 가족을 힘들게 만들고 중도에 장기기증을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한계에 이른 KONOS의 역할을 일부 대신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시험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민간 장기적출관리기관(OPO)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OPO는 장기이식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민간기구로, 이른 시일 내 국내 장기이식에 활용돼야 한다.
국내 장기이식은 생체이식에서는 서구에 못지않게 성적이 좋다. 특히 생체 간이식은 서구보다 훨씬 많은 수술을 했고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그러나 뇌사자의 장기이식은 국내 장기이식의 필수 요건이나 서구보다 사례가 저조하다.
전통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사체를 잘 보존해 내세를 대비하려는 생각이 뇌사자 장기적출의 걸림돌이 된다. 최근에는 오히려 종교계를 대표해 장기기증 활성화 단체가 속속 생겨나 국내 장기기증 문화를 이끌고 있다.
결국 장기기증의 활성화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장기기증의 사회적 계몽 및 홍보와 함께 장기이식법을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개정해야 한다.
최근 미국 연방법에 잠재 뇌사자를 의무적으로 보고하라고 추가되었듯이, 국내에서도 잠재 뇌사자를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하는 것이 뇌사자 장기 기증을 활성화하는 데 큰 효과를 보일 것이다.
한덕종 대한이식학회 이사장ㆍ서울아산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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