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권력을 싹쓸이하자."
한나라당이 집권하면서 거침 없이 쏟아지는 좌파인사 척결론에 문화계가 뒤숭숭하다. "붉은 물이 들어버린 문화계의 잔재들을 깨끗이 청소하자" "좌파 문화권력의 폐해를 도려내야 한다"는 섬뜩한 발언도 서슴없이 나온다. 마치 해방 후 문화예술계를 찢어놓은 좌우익 대립을 보는 듯 하다.
노무현 정부 들어 코드가 맞는 예술단체인 민예총이나 문화연대 출신 인사들이 문화계 주요 자리를 차지한 것은 사실이다. 진보성향의 문화 운동가들이 속속 문화권력을 장악해 나갔고 이 과정에서 크고 작은 갈등과 대립을 빚었다.
하지만 요즘의 문화계가 친북 반미와 같은 이념에 오염됐다거나 순수예술이 고사직전으로 추락했다는 주장은 지나친 비약이다. 대표적인 핵심 문화권력 인사로 스크린쿼터 투쟁에 앞장섰던 이창동, 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이 입각 후 소신을 뒤집은 것은 '친북 좌파의 선전 선동에 물든 예술계'와는 한참 동떨어진 행태였다.
진보성향 인사를 중심으로 짜여졌던 문화권력 판도의 재편은 어느 정도는 당연하고도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런 한풀이 식의 발상은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다.
지금이 그럴 만큼 혁명적 상황인지도 의문이지만 좌파인사를 싹쓸이 하고 그 자리를 우파인사로 채워서 얻을 것이 무엇인가. 문화계를 다시 싸움판으로 몰아넣고 "창의력을 갖춘 문화강국을 만들자"는 새 정부의 공약이 실현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냉정히 따지면 코드인사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코드인사 자체를 백안시하는 것은 민주주의 방식에 의한 합리적인 권력교체 자체를 부인하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이명박 당선인이 자신의 코드에 맞는 인물을 중용하리라는 것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중요한 것은 문화권력을 누가 차지하느냐에 있지 않다. 그들 말대로 문화의 순기능, 국가 경쟁력의 원동력이나 사회통합적 기능을 얼마나 이끌어내느냐에 성패가 달려있다.
16세기 일본에 전국시대가 끝나고 평화시대가 도래하자 지도층은 새로운 가치체계를 창출하는 데 골몰했다. 이때 오다 노부나가는 문화로 눈을 돌려 다도(茶道)를 장려하기 시작했다.
다이묘들은 금세 다도에 푹 빠졌고 관련 예술이 급속히 발전했음은 물론이다. 노부나가는 전환시대의 권력관계를 문화적으로 재생산해 사회 안정과 문화 발전에 기여했다. 새 정부에 필요한 것은 바로 이 같은 열려있고 깨어있는 리더십이다.
문화계가 정작 더 우려하는 것은 문화권력보다는 '시장권력'이다. 새 정부의 속성상 문화권력의 재편은 필연적으로 시장권력의 발호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까닭이다.
문화적 가치를 경제적 수치로 환원하는데 익숙한 경제 만능주의는 창의적인 예술적 상상력에 치명적인 해를 끼친다. 문화라고 해서 시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섣부른 시장권력은 문화성을 고사시키고 압살할 게 뻔하다.
지난 10여 년간의 어설픈 신자유주의 예술정책이 대중문화의 시장 경쟁력을 오히려 약화시키지 않았는가. 이명박 정부가 문화가 풍성하게 꽃피기를 진정 바란다면 문화예술계가 마음껏 예술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갖고 끈질기게 지켜봐야 한다.
생존게임과 싹쓸이로 위협하기 보다는 예술가들의 창작활동 지원방안을 논의하는 게 옳은 순서다. 제발 문화를 그대로 내버려두자.
이충재 부국장 겸 문화부장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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