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간단합니다. 한 발 한 발 걸어서 올라갔지요. 진정으로 바라는 게 있으면 이룰 때까지 하면 됩니다."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을 정복했던 에드먼드 힐러리 경(卿)이 어제 타계했다.
1953년 5월 29일, 지구 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섰던 그는 "어떻게 세계 최고봉을 정복할 수 있었느냐"는 인터뷰 질문에 그렇게 답했다. 비법에 대해 덧붙인 답변도 간단했다.
"안 되면 포기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찾습니다. 그래도 안 되면 원인을 분석합니다. 분석도 안 되면 연구를 합니다. 그 쯤 되니 운명이 내 손을 들어주기 시작하더군요."
■세계 최고의 등반가ㆍ모험가가 터득한 '간단한 비법'은 스스로 꺼뜨리지 않는 꿈이었고, 꿈의 원천은 독서였다. 뉴질랜드 북섬 한적한 시골에서 태어난 그는 고교 수학여행에서 눈 덮인 산을 처음 보고 꿈을 키웠다. 매일 왕복 4시간씩 기차를 타고 통학하는 시간이 한 권의 책을 읽기에 가장 좋은 환경이었다고 했다.
책 속에서 만났던 꿈이 있었기에 눈 덮인 산을 보는 순간 에베레스트를 향한 '한 발 한 발'이 시작될 수 있었다. 그는 자서전(Nothing Venture, Nothing Winㆍ1975)에서 그것을 '동기부여(motivation)'라고 했다.
■뉴질랜드의 5달러짜리 지폐에 얼굴이 인쇄돼 있을 만큼 그는 국가적 영웅이다. 그 출발은 조그만 섬나라의 위상을 높인 것이었지만, 50년 넘게 존경 받는 '키위(뉴질랜드 상징인 새 또는 과일)맨'으로 불리는 이유는 겸손과 박애를 실천하고, 청소년들에게 꿈을 심어 주었기 때문이다.
셰르파였던 네팔인 텐징 노르게이(1989년 사망)를 거론하며 언제나 "내가 최초가 아니라 우리가 최초의 팀"이라고 했다. 히말라야 오지에 병원과 진료소 학교를 설립하여 사랑을 나눠주었다. 그는 최근까지 "아직도 꿈이 남아 있어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했다.
■1995년 퍼스트 레이디 힐러리 클린턴은 "어머니가 힐러리 경을 본따 이름을 지어주었다. 'L자'가 두 개인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겸손과 박애, 꿈의 이미지 때문이었다. 하지만 언론은 "그 때 힐러리 여사(1947년 생)는 이미 6세였다"고 꼬집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힐러리는 2006년에 이렇게 말했다. "그 분의 이름을 본딴 것은 사실이 아니다. (우연히 이름이 일치했지만) 어머니가 힐러리 경을 이야기하며 영감을 불어 넣었고, 결과적으로 똑같이 위대한 '힐러리'가 되었다…". 그녀도 정말 '위대한 힐러리'가 될까?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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