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한창이던 지난해 7월 어느날. 한국무역협회에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그 달 28일 열리는 한국무역협회 창립 60주년 기념식에서 공로패를 준다는 내용이었다. 벌써 60년이 흘렀던가. 무역협회 창립을 위해 뜻을 같이 하는 동지들과 밤낮으로 뛰어 다니던 일들이 엊그제 같은데…. 그간 무역대국을 이루기 위해 헤쳐왔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비록 수십 년의 세월이 유수처럼 흘러갔지만, 그래도 나에 대한 아이덴티티는 확실하다. 바로 내가 대한민국의 ‘무역 1세대’라는 것이다. 변변한 공산품 하나 없던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무역이라는 것에 뛰어든 사람이 나다. 우리나라의 무역사가 곧 나의 무역 도전사이기도 하다.
지금은 일선에서 은퇴했지만, 한창 때는 한국과 홍콩, 상하이 등을 오가며 무역 최전방에서 열심히 뛰었다.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등의 위기를 겪으면서도 무역에 대한 신념 하나만으로 지금껏 달려왔다. 그 바탕에는 기업가로서의 도전 정신과 개척 정신이 자리잡고 있다. 그럼 지금부터 나의 무역이야기를 시작하겠다.
내가 처음으로 무역에 뛰어든 것은 광복 직후인 19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27세의 나이로 ‘삼화무역공사’를 설립, 의욕적으로 무역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우리 사회에 생소하던 무역업을 시작하게 된 데는 중국 상하이에서 건너온 무역상 남일선씨의 영향이 컸다.
남씨는 국내에 처음 무역선을 들여온 선구자적인 인물이다. 그는 48년 초 상하이에서 양복지, 신문용지, 페니실린 등을 한배 가득 싣고 인천항으로 들어왔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물건들이었다. 나는 큰 충격을 받았고, 밤낮으로 그와 교류하며 해외 시장에 눈을 뜨게 됐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꼭 해외로 진출하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해외로 가지고 나갈 상품이 없었다. 기껏 해봐야 오징어, 사과 등이 전부였다. 그래도 그 해 10월 마른 오징어를 싣고 홍콩행 화물선에 몸을 실었다. 영국 상선회사 ‘태고(太古)양행’ 소속 화물선을 타고 인천을 떠난 지 닷새 만에 홍콩에 도착했다.
홍콩항에 첫 발을 디딘 나는 두 번째 큰 충격을 받았다. 홍콩은 그야말로 불야성이었다. 우익과 좌익의 사상 갈등으로 국토가 반으로 갈려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던 내 고국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홍콩항은 서양에서 건너온 희귀한 물건들로 넘쳐 났고 사람들의 얼굴에선 활기가 흘렀다. 넘쳤다. 한동안 얼음장처럼 얼어붙었던 나는 정신을 수습해 세계 각국의 사업가들이 모여든다는 호텔 ‘육국반점’으로 향했다.
거기서 일본말을 잘하는 중국인 사업가를 만날 수 있었다. 이 사람을 통해 홍콩을 거점으로 수입품 도매상을 하던 ‘자유공사’에 오징어 2,000t을 넘기고 5만달러를 손에 쥐었다. 당시론 큰 돈이었다. 나와 함께 화물선을 타고 왔던 ‘화신’의 박흥식씨, ‘건설실업’의 김익균씨(납북) 등 한국의 무역 1세대들은 오징어와 계란, 아연, 텅스텐 등을 홍콩에 수출해 외화를 벌어들였다.
변변한 공산품이 없던 시절이었지만, 패기 넘치는 청년 무역인들의 활약 덕분에 신생 독립국 한국은 1948년에 1,420만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릴 수 있었다.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피가 끓는다. 활기로 넘쳐 나던 홍콩항 모습이 눈에 선하다. 반면, 당시 우리의 현실과 미래는 너무나 암울했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는 하루에 1억달러를 수출하는 11대 무역강국으로 성장했다. 나와 같은 무역 1세대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김기탁회장은 누구
김기탁(88) 삼화제지 명예회장은 '한국 무역사'(史)의 산 증인이다. 그는 광복 직후인 1948년 '삼화무역공사'를 설립, 화물선을 타고 홍콩에 오징어를 수출했던 '1세대 무역인'이다. 1960년대 초반에는 독일에 엽연초(葉煙草)를 수출했고, 70년대부터 80년대 초반까지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 등 동남아시아 시장에 제지류를 수출하기도 했다.
삼화무역은 80년대 초반 수출 실적 3,000만달러를 돌파하는 등 승승장구 했으나, 80년대 후반부터 대기업의 종합상사가 본격적으로 무역업에 뛰어들면서 입지가 좁아지자 무역 비중을 줄이고 내수용 제지사업에 집중했다.
1954년 한국무역협회 이사가 된 그는 지금까지 협회 이사 직함을 유지하고 있다. 71년부터 14년 동안 무역협회 부회장도 역임했다. 이사와 부회장 모두 최장수 기록이다.
1921년 충북 괴산 출생/41년 선린상업학교 졸업/48년 삼화무역공사 사장/49년 삼화실업 창립/56년 한국무역협회 상임이사/63년 한국은행 금융통화운돛㎰捌暈接??별騙泰笭컹말?창립/67년 삼화제지 창립/71년 한국무역협회 부회장/81년 삼화교역 회장/99년 삼화(제지)그룹 명예회장
삼화제지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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