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가수 BMK 박선주 김범수 바비킴 등의 라이브 세션으로, 때론 <올 댓 재즈> 와 같은 재즈 클럽에서 실력을 쌓아온 재즈 피아니스트 전영세(29)가 최근 자신의 이름을 건 음반 을 내고 본격적으로 대중 앞에 나섰다. 올>
이달 중순 대중적인 인기보다는 실력이 앞서는 뮤지션 만이 무대에 오르는 것으로 유명한 EBS <스페이스 공감> 에 초대되어 바쁜 한 해를 시작하게 됐다. 국내 발행 재즈 잡지들로부터 올해 기대되는 재즈 유망주로 꼽히기도 했던 그를 광화문 KT아트센터에서 만났다. 스페이스>
그는 두 살 때 녹내장을 앓아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하모니카 연주가로 유명한 전제덕과 마찬가지인 시각 장애 재즈 뮤지션이다. 전영세는 불과 얼마 전까지 ‘찬별’이란 이름의 안내견과 길을 함께 걸었다.
7년을 곁에 있던 찬별이는 가족이며 친구였지만 열 살을 넘긴 녀석은 더 이상 안내견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었고 지난 크리스마스 전영세의 곁을 떠났다. 그는 오랜만에 안내견 없이 나선 외출길이 쉽지는 않았다. “지금도 꿈에 나타나죠. 동생이고 친구였는데…. 예전에 안내견과 함께 다니는 시각장애인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이 심하다는 내용의 인터뷰에 종종 찬별이와 등장하곤 했죠.”
전영세의 이번 앨범은 한국 재즈계에서 젊은 연주인으로 두각을 나타내온 더블베이스 주자 김영후, 드러머 김상헌과 함께 꾸민 작품으로 찬별이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앞으로’를 비롯해 매우 뚜렷한 비주얼 이미지를 담은 ‘비눗방울’ ‘롤러코스터’등이 실려있다. 마치 한 폭의 정물화를 들여다보듯 강렬한 시각적 경험이 풍기는 연주곡이 시각 장애인의 손으로 쓰여졌다는 게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앞을 못 본 스티비 원더나 레이 찰스도 남겨진 감각을 십분 발휘해서 영혼을 울리는 음악을 만들었잖아요. 계절 중에서 가을을 가장 좋아하는데, 추수가 끝난 가을 들에 서있으면 그 스산하지만 포근한 풍경을 몸으로 맞는 느낌이 꼭 눈으로 보지 않더라도 선명하게 전해져요. 이 기분을 가지고 음반을 꾸몄죠. 꼭 봐야 느끼는 건 아니에요. 눈이 보이지 않아 불편한 게 많지만 몰입을 잘 할 수 있다는 건 좋은 점이에요. 친구들 중에 연주를 잘하려고 일부러 눈을 가리고 피아노를 치는 경우도 있는데요.”
전영세는 악보를 보지 못하고 음표를 그리지 않지만 시각 대신 키워진 기억력 덕분에 음악을 만드는데 별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떠오른 악상을 연주하고, 이를 녹음한 후 다음 소절을 이어 붙이는 식으로 작곡을 한다. “일곱 살 때 멜로디언으로 동요를 그냥 연주하는 걸 본 부모님이 피아노를 배우게 하셨죠. 점자로 만들어진 악보로 피아노를 배웠지만 한동안 지겹다는 생각에 연주를 관두기도 했어요. 제 음악적인 욕심은 별 거 없어요. 허비 행콕처럼 관객과 공유하는 재즈를 연주하고 싶을 뿐이에요. 특별히 내 음악이라며 고집을 부려 대중이 재즈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싶진 않아요.”
찬별이가 떠난 후 열흘만에 그는 딸을 얻었다. 세상에는 비워지더라도 곧 다시 채워지는 묘한 규칙이 분명히 존재하나 보다. 비록 한국에서 대중음악, 그것도 점유율 5%에 그치는 재즈를, 시각장애인의 몸으로 연주한다는 게 그다지 희망적으로 보이지 않더라도 전영세가 계속 음악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재즈를 왜 하냐고요? 당연히 좋으니까 하죠.” 별걸 다 물어본다는 듯. 색안경으로 시선은 가려졌지만 익살스러운 행복이 묻어난다.
배우한 기자 bwh3410@hk.co.kr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