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동신문이 발표한 신년사설에 대한 반응이 각양각색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사설에서 북한이 약방에 감초 격으로 반복하던 반한나라당 구호를 빼고, '인민생활 제일주의'를 내세웠다는 점에서 대남 정책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반색하고 있다.
실제 북한은 이번 사설에서 남북경협을 공리공영(共利共榮)에 따라 장려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남북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원리원칙 하에서 남북협력을 하겠다는 선언이라는 점에서 고무적인 변화로 비치기도 한다.
■ 공공성 대 기회비용의 딜레마
그러나 공리공영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남북협력이 분명한 공동이익을 창출할 뿐만 아니라, 남한 경제의 상대수익(relative gain)도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절대 수익의 발생 여부에만 초점을 두게 되면, 북측이 보기에는 공리이자 공영이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퍼주기'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남북의 경제규모 차이에 따른 경협효과의 기대치와 '눈높이' 차이의 필연적인 귀결이다.
일반적으로 경제협력의 비용-편익 분석은 기회비용 개념에 입각해야 한다. 따라서 대북 투자의 효율성을 따지자면, 북한에 대한 투자비용 대 편익 간의 차이만 볼 것이 아니라 이를 베트남이나 중국에 대한 투자비용 대 편익 간의 차이와 비교해서 보아야 한다.
곧 대북 투자 비용-편익 차가 절대적으로 '정(正)'의 수익을 보일지라도, 그 규모가 베트남이나 중국 등지에 대한 투자비용-편익 차 보다 작다면, 이 때의 대북투자는 사실상 손실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남북협력을 민간 기업의 이런 셈법에만 맡긴다면, 대북 투자협력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재 수준으로만 보면, 대북 투자의 기대 수익이 타국과의 협력에 비해 그리 크지 않거나 더 작기 때문이다.
결국 공공성의 문제이다. 국가의 존립 근거는 시장 실패를 피하기 위함이다. 장기가 될 수밖에 없는 자본 회수 기간을 견뎌낼 수 있는 보상을 제공하여 기업이 스스로 단견을 극복하고 장기 투자에 뛰어들도록 유도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이런 뒷받침 없이 기업 스스로가 잠재적 이익을 현재화하는 성장 동력이 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남북협력이 이 같은 공공성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면 국가는 적극적 지원을 통해 남북 경협의 숨통을 터줘야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깨끗하게 접을 일이다. 물론 이에 대한 판단은 남북 경제 통합이 필요한가 라는 근본적인 철학적 질문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최근 참여정부의 통일정책에 부정적인 견해를 표하면서도, 참여정부가 통일보다는 평화문제를 더 강조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하는 경우가 많다.
참여정부가 지역(region)과 평화, 그리고 공영을 더 강조하여 통일문제나 북한 주민의 삶의 문제를 후순위로 둔다는 '직감'과, 대북 퍼주기의 과잉이라는 '논리'가 절묘하게 결합된 비판이다. 그 기묘한 비판의 한 중간에 있는 신 정부가 향후 어떤 장단에 맞춰 실타래를 풀어 나갈지는 흥미로운 관찰 대상이다.
■ 천천히 가려다 서는 일 없어야
신 정부는 일단 그 시작을 속도조절론에서 출발하는 듯 싶다. 우리 시각에서만 보면 이는 앞서 본 딜레마를 해결하는 현명한 선택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남북협력은 상대가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경협에 대한 '눈높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북한의 공리공영론이 남측의 '퍼주기' 비판에 무기력한 것처럼, 상대가 있는 남북 협력사업을 우리 일방만이 속도조절 운운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 오류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서투른 서행이 달리는 열차를 멈추게 해 버리면, 새로 출발하는 비용은 배가 되게 마련이다. 서행과 급행의 완급 조절에 능통한 기관사의 출현을 기대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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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철 숭실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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