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말이 되면서 지방대학 위기설이 대두하기 시작했다. 80년대 후반부터 신규 지방대학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정원이 대폭 증원됐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입학정원조차 채우지 못하는 대학이 생겼다. 그런 대학들의 운영난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학교재단의 비리가 사회문제화하기도 했다.
이런 환경을 접하면서 나는 학교 일에 직접 관여키로 하고 2001년 제4대 총장에 취임했다. 그 동안 재단이사장으로 학교를 뒷바라지 했지만 이제는 대학 운영을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개교 10주년이 되면서 대학이 어느 정도 기반을 잡았지만, 법인 이사들은 대학이 더욱 단단한 반석 위에 올라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며 총장 취임을 권유했다.
병원만 경영하다가 총장이 되고 보니 대학은 교육 외에도 다양한 요소가 결합한 독특한 시스템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교수, 학생, 환경미화원, 버스기사, 경비원, 학교 주변 상가 주인, 원룸 및 하숙집 주인 등 관계자들을 만나 학내 사정과 학교 주변 환경을 확인했다.
학생들이 과도한 음주를 하지 않도록 상가 주인들에게 부탁하고 원룸 주인 70여명을 명예사감으로 위촉했으며 교수들을 교외사감으로 임명해 학부모들의 걱정을 덜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가정, 학교, 사회에 충분한 대화가 있으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깊이 깨달았다. 그래서 자리에 앉아있는 시간을 가급적 줄이고 학교를 순시하거나 학교버스를 타고 학생들과 수시로 접촉, 그들의 의견을 듣고 또한 대부분 수용했다.
매년 입학식이 끝난 뒤 학부모들과 간담회를 열어 학교의 교육 및 생활지도 방침을 말씀 드리고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 이렇게 학교 안팎을 챙기는 것은 ‘학생은 고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의료서비스’라는 말이 상용되듯 교육기관도 수용자를 위한 서비스 공간으로 인식해야 한다.
나는 학생을 위한 학교의 서비스로 첫째 ‘쾌적하고 깨끗한 교육환경 제공’, 둘째 ‘면학 분위기 조성’, 셋째 ‘높은 취업률 달성’을 꼽고 있다.
그런 의지를 갖고 노력했더니 건양대는 전국 4년제 대학 중 유일하게 7년 연속 90% 이상의 취업률을 달성했고 대학종합평가 등 외부평가에서 최우수 및 우수 대학으로 선정됐다. ‘대학공부 시키고도 취직을 시키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대학이냐?’는 내 뜻을 잘 이해하고 실천한 학교 구성원들의 노력에 감사한다.
최근에는 지방대학의 위기설이 사실로 나타나 대학간 인수합병(M&A)은 물론 신입생을 절반도 못 채워 정상적으로 운영하지 못하는 곳이 생기고 있다. 학생이 없어서 없어지는 학과도 있다.
대학 정원이 갑자기 증가하고 대학 설립이 쉬워진 탓도 있지만 학교를 안이하게 운영한 탓도 있을 것이다. 대학마다 특성화니, 산학연 협동이니 하여 자구책 마련에 나서지만 학생의 요구가 무엇인지, 만족도가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면 학생들은 떠나기 마련이다.
지난번에 잠깐 언급했듯 나는 지금도 매일 새벽 3시30분 기상해 4시면 병원에 도착한다. 약 1시간에 걸쳐 병동을 돌아본 뒤 집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7시 30분께 다시 병원에 출근하고 10시께 대학으로 가서 업무를 보고 학교를 순시한다. 허리에 찬 만보기에는 1만2,000~1만5,000보가 기본으로 찍힌다.
매주 목요일 아침 나는 보직교수 및 주요 팀장들과 머리를 맞대고 ‘혁신과제회의’를 열어 학교 발전을 위한 여러 아이디어를 얻는다. 여든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지만 그 때문에 뒤쳐지는 리더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게 내 철학이다. 그래서 항상 ‘You can do, he can do, why not me?’(이 사람도 하고, 저 사람도 하는데 왜 나는 못하겠는가)를 자문하며 학생들에게도 강조한다.
공직에서 은퇴하고도 한참 지났을 나이인 일흔 네 살에 총장이 됐고 3년 임기를 두 번 마치고 여든 나이에 세 번째 총장이 됐지만 할 일이 아직 산적해 있다. 2년 전 건양대병원 옆에 대전 캠퍼스를 완공, 보건의료계열 학과를 옮겼는데 그곳에 교사를 증축하고 지역민을 위한 복합웰빙센터를 세울 예정이다.
지난해 봄에는 부여중앙병원 및 노인전문요양원 운영을 시작했고 충남도청 이전지인 홍성에 건양대병원을 건립하는 양해각서(MOU)도 체결했다. 나는 건양대가 지역사회 발전의 밑거름이 되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모범사학으로 자리매김할 때까지 영원한 현역이고 싶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서 영등포에서 작은 안과의원으로 시작해 평생 내가 일군 육영과 의료의 길이 둘이 아니라 하나였음을 깨닫는다. 사람의 병을 고치는 것과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둘 다 경중을 따질 수 없이 소중한 일이다. 이 둘을 큰 잘못 없이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많은 분들의 헌신적인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자리를 통해 고마운 말씀을 드린다.
건양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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