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0만명 가량의 저(低) 신용자들이 신용회복기금(가칭)에 신고해, 자신의 무거운 채무를 일정 부분 정부에게 넘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신용 7~10등급으로 은행에서는 상대해주지 않고 살인적 이자를 감수하며 대부업체나 사채시장의 문을 두드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대상이다. 하지만 채무 500만원 이하 생계형 연체자들의 연체기록 자체를 없애주겠다는 ‘신용 대사면’ 공약을 놓고는 논란이 지속될 전망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장수만 전문위원은 3일 금융감독위원회의 업무보고를 받은 후 브리핑에서 “최대한 빨리 효율적으로 (신용회복 프로그램) 대책을 만들기로 했다”고 말했다. 신용회복 대상자들의 채무는 총 10조원 정도가 될 것으로 추산했다.
차기 정부는 공적자금을 투입해 신용회복기금을 만들고, 신고된 금융소외자의 채무를 사들인 뒤 개인별 협상을 통해 원금을 분할해서 갚게 하거나 사정에 따라 이자를 감면할 방침이다.
하지만 딜레마가 있다. 신용 7~8등급은 신용도는 낮지만 연체 없이 대출을 갚고 있는 사람들. 이들의 채무까지 정부가 사들여 조정을 해 줄 필요가 있는지다. 반대로 이들을 제외하고 9~10등급 연체자에 한해 신용회복 프로그램을 운용한다면, 지금 운용되고 있는 프로그램과 다를 바가 없다.
현재 자산관리공사는 ‘희망모아’라는 신용회복절차를 통해 금융회사가 보유한 생계형 신용불량자의 채권을 일괄 매입하고, 동시에 이자가 면제된 상태에서 채무자들이 최대 8년간 원금을 나눠 갚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 일각에서는 이명박 당선자의 신용대사면 공약이 기존의 신용회복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정도일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시ㆍ도별로 저신용자의 자활과 창업자금을 지원하는 서민대출은행을 1개씩 설립하겠다는 공약도, 금융감독당국이 이미 추진 중인 은행ㆍ저축은행의 서민대상 대부업 진출방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공약 중에 현 정부와 가장 차별성이 있는 것은, 연체기록 삭제 부분이다. 채무 500만원 이하 생계형 신용불량자들의 연체기록을 없애주겠다는 공약은 서민들이‘고리 대부업 이용→연체→신용불량→은행의 거래거부→대부업 이용’과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은 수 있는 방안이다.
하지만 예전에도 그랬듯이, 금융기관들이 개별적으로 연체기록을 보관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남아 있다. 신용사회를 지향하는 마당에, 신용전과기록을 삭제하는 것은 ‘포풀리즘’이란 지적도 많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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