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동호회인 ‘고클래식’에서는 요즘 ‘가장 좋아하는 한국의 청장년 피아니스트는?’ 이라는 제목의 설문 조사가 진행 중이다. 12월 10일 시작돼 2월 10일까지 이어지는 이 설문 조사는 고양문화재단이 의뢰한 것으로, 6일까지 2,300여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고양문화재단은 ‘21세기를 이끌어갈 한국의 연주자 시리즈’를 매년 진행하며, 올해는 그 첫번째로 한국의 피아니스트를 테마로 연중 공연을 연다고 밝혔다. 클래식 동호회 회원들과 음악 평론가와 기자 등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해 5명을 선정, 고양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고양아람누리에서 리사이틀을 연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재단 측은 ‘관객 참여형 공연 기획’이라며 홍보했다.
하지만 투표 시작 보름여만인 12월 27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재단 측은 피아니스트 시리즈의 첫 회로 임동혁이 2월 22일 공연을 한다고 밝혔다. 고양문화재단 관계자는 “원래 연주자 선정을 위한 설문 조사 기간은 12월 31일까지며, 임동혁, 김선욱, 손열음 등이 선정됐다. 투표가 2월까지 계속되는 것은 고클래식 운영진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자체 투표 기간도 채우지 않고 임동혁의 공연을 미리 발표한 것에 대해서는 “다른 연주자들과 많은 차이가 났기 때문에 며칠 사이에 5위 밖으로 나가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끝나기도 전에 결과를 알 수 있는 설문 조사를 굳이 할 필요가 있었을까. 31일까지 집계된 총 투표 인원은 690명. 얼마든 뒤집힐 수 있는 수치다.
또 하나, 임동혁은 2월 고양아람누리 외에도 12개 공연장에서 같은 프로그램으로 리사이틀을 한다. 고양문화재단은 다른 공연기획사가 기획한 임동혁의 공연을 구매한 것이지, 기획한 것이 아니었다. 여기에 ‘한국의 피아니스트 시리즈’라는 이름을 입히고, 앞뒤가 맞지 않는 설문조사 결과까지 더해 포장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재단 측은 “선정이 유력한 임동혁이 마침 2월에 공연을 한다고 하길래 추가 비용 문제 등을 고려해 시리즈의 첫 회로 잡은 것”이라고 궁색한 답변을 했다.
임동혁의 팬카페에는 “이미 예정된 독주회에 묻어가는 것이냐. 5위 안에 든다면 별도의 연주회가 열릴 것으로 생각하고 투표했는데 허무하다”는 불만의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투표 결과도 나오기 전에 얼렁뚱땅 시리즈가 시작된다”는 지적도 있다. ‘애호가와 전문가가 함께 한국의 피아니스트를 선정하고, 이를 통해 클래식 관객층을 넓히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거창한 명분은 안이한 기획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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