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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냉동창고 화재 참사/ 대부분 일용직… "이렇게 가면 안돼" 오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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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냉동창고 화재 참사/ 대부분 일용직… "이렇게 가면 안돼" 오열

입력
2008.01.08 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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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전 발생한 경기 이천 코리아2000 냉동물류창고 화재 참사 현장에서 탈출하지 못한 채 숨져간 근로자들은 대부분 하청 업체 일용직이었다. 생계 유지를 위해 일을 나섰다 변을 당한 경우가 태반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들 가운데 중국 동포 등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 땅을 밟은 외국인 근로자들도 13명이 포함돼 있어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화마에 스러진 이용호(43)씨의 작은 아버지 이차희(68ㆍ서울 구로구 오류동)씨는 이날 오후 6시30분께 아비규환의 생지옥으로 변한 화재 현장 물류창고 단지 앞에서 넋을 잃었다.

이씨가 청천벽력 같은 비보를 전해 듣고 현장으로 달려 온 것은 이날 오후1시께. 의사인 아들한테서 "아버지, 형과 비슷한 이름이 나오는데 이상하다"는 전화를 받았다. 불길한 마음에 조카가 다니는 회사에 전화를 해봐도, 휴대폰을 걸어봐도 받지 않았다. 불길했다. "용호로부터 마지막 전화를 받은 게 지난 토요일인데, 그 녀석이 '작은 아버지 잘 지내시죠. 건강은 괜찮으시죠'라며 통화한 게 마지막이 될 줄이야…."

이씨는 사고 당시 지하 1층에서 냉동설비 업무에 열중하고 있었다. 작은 아버지 이씨는 가족에게 늘 잘 하려 노력했던 조카와의 영원한 이별을 받아 들이기 힘든 표정이었다.

화재 현장에 도착한 이씨는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넘어지기를 여러 번. "아니겠지, 아닐 거야, 그렇게 착하고 성실한 녀석에게 이런 일이 일어 날 수는 없어. 뭔가 잘못된 게 분명해. 그렇고 말고…" 실낱 같은 이씨의 희망은 유가족 대기실 앞에 붙여진 실종자 명단을 확인한 뒤 여지없이 무너졌다.

사건 발생 후 '이영호' 이름이 실종자 명단에 들어있어 아니기를 그토록 바랬지만, 결국 조카를 고용한 회사의 최종통보를 받고는 믿을 수 없는 현실 앞에 고개를 떨궜다.

이씨는 경기 광명 집에 아내와 딸(14), 아들(11)을 둔 든든한 가장이었다. 주중에는 이천으로 내려와 일을 하고, 토요일에는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와 남편 역할에 충실했다. 힘들었지만 행복한 삶이었다. 자신이 더 힘들면 가족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이씨를 힘든 작업으로부터 버티게 했다.

그러면서도 멀리 떨어져 지내는 부산의 홀어머니(67)와 동생 걱정도 늘 그의 몫이었다. 지인들에 따르면 4형제 중 장남인 이씨는 홀어머니가 관절염을 오래 앓는 등 몸이 불편해 늘 가족 걱정을 하면서도 대학시절 4년 내내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다. 긍정적인 사고와 성실한 태도로 주위 칭찬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사망자로 추정되는 이성복씨와 현재 서울 강남구 베스티안 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인 임춘원(45ㆍ여)씨는 부부 사이로 알려졌다. 남편의 생사조차 모른 채 응급실에 실려온 임씨는 온몸이 붕대로 싸인 채 거친 숨을 몰아 쉬면서도 "(이 번호로)전화를 해달라"며 화상을 입은 상황에서도 남편을 찾아 주위를 숙연케 했다.

임씨는 "등뒤로 불길이 뒤쫓아왔던 것만 기억 난다"며 아찔했던 순간에 몸서리를 친 뒤 정신을 잃었다. 비보를 접하고 한달음에 달려온 임씨의 언니(51)는 "중국에서 식당 일을 하면서 어렵게 살다가 아들까지 남겨 두고 한국에 돈 벌려고 왔는데…"라며 말을 잊지 못하다 "3년 뒤 중국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려고 했던 동생의 작은 꿈마저 이제 물거품이 돼 버렸다"며 목 놓아 울었다.

시신이 옮겨진 장례식장도 슬픔과 절망에 휩싸였다. 30여명의 시신이 이송된 이천 효자원에는 시시각각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검게 그을린 사체가 들어왔고, 입관실에서는 가족과 경찰의 입회 하에 신원확인 작업 등이 진행됐다. 사고 당시 지하 1층에서 청소 일을 했던 이을순(여)씨의 주검을 마주한 가족은 "이렇게 갈 분이 아닌데…"라며 오열했다.

숨진 외국인 근로자 가운데 매형과 처남이 함께 참변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 중국 동포로 알려진 박용식씨와 박씨의 처남도 사고 당시 지하 1층에서 서로를 도와가며 작업을 하다 3차례 '펑'하는 폭발음과 함께 그만 스러지고 말았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박원기기자 o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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