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편집국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의리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편집국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의리

입력
2008.01.08 04:43
0 0

얻고자 하는 실리를 어떤 명분으로 포장하느냐는 정치에서 아주 중요하다. 알맹이가 같아도 포장을 얼마나 그럴 듯 하게 하느냐에 따라 곧잘 성패가 좌우되고, 승부가 갈린다. 정치는 어차피 상징조작의 게임이다.

한나라당의 18대 총선 공천시기를 놓고 갈등하고 있는 이명박 당선인과 박근혜 전 대표의 목적은 같다. 당내 지분 확대 내지 보전이다. 두 사람이 공천시점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는 것은 자파 인맥을 한 사람이라도 더 의원으로 당선시키기 위해서다. 이 당선인은 이를 통한 일사불란한 당청 관계를, 박 전 대표는 차기대권 재도전의 발판마련을 각각 지향한다.

그런데 포장은 다르다. 이 당선인은 ‘물갈이론’을, 박 전 대표는 ‘의리론’을 내세운다. 이 당선인은 일찍이 ‘여의도 정치’의 개혁을 공언했고, 최근에도 “정치에 대한 국민 신뢰도가 10%대”라며 물갈이 공천이 필요하다는 뜻을 내비쳤다.

반면 박 전 대표는 물갈이론의 칼끝이 경선에서 자신을 도운 의원들을 겨냥할 것이라며 그들을 지켜내겠다는 식이다. 그는 “10년 야당 생활을 하며 고생한 사람이 있어 정권교체가 이뤄졌는데 그들을 향해 어떻게 물갈이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느냐”고 말했다.

이런 구도라면 우열은 분명하다. 지키려는 사람은 바꾸겠다는 사람을 당하기 어렵다. 다수 국민이 바꾸는 것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연초 언론사들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가 그걸 확인해준다.

국민의 정치권 물갈이 요구는 일정부분 ‘묻지마’ 경향을 띤 것도 사실이다. 무슨 과학적 근거가 있는 건 아니다. 정치에 대한 막연한 불신이 이런 관성을 낳고 있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게 국민의 눈높이다.

하물며 반(反) 독재투쟁 하다가 감옥 가는 일도 없는 요즘 세상에 “의원들이 정권교체를 위해 10년 간 고생했다”는 말에 공감할 국민이 얼마나 될까. 그것은 박 전 대표와 추종 세력들의 ‘끼리끼리 연민’이다.

박 전 대표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다. 경선과정에서 ‘신세’를 진 많은 의원들의 “살려달라”는 읍소를 외면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그래도 벌써부터 전면에 나서 싸움을 주도하는 모습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여론의 흐름과 엇나가는 당내 세력 지키기로는 결코 차기를 기약할 수 없다. 의원들을 모아 세를 과시하고, 그것으로 당 밖 대세론을 만들어 대선에서 이기는 시대는 갔다. 지금은 거꾸로다. 국민지지를 업으면 의원들은 모여들게 돼 있다. 4년 전 17대 총선 직전 박 전 대표나 서울시장 재임시절 이 당선인은 세력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지만 희생과 감동, 실적으로 국민의 마음을 삼으로써 오늘을 일궜다.

차기 후보들 중 박 전 대표만큼 긍정적 자산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도 드물다. 그러나 지키기에 연연한다면 당장은 약자로 비쳐져 동정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미래는 좀 먹을 것이다. 지키기는 곧 퇴보다.

박 전 대표는 이 당선인측이 공평무사한 물갈이 공천을 할 리가 없다고 의심하고 있다. 하지만 이 당선인측 의원들에 대한 읍참마속 없이 일방 통행식 물갈이가 강행된다면 그것은 박 전 대표에겐 또 다른 기회가 된다. 박 전 대표의 시야가 금배지 한번 더 다는 게 지상 목표인 의원들과 같을 수는 없다. 그는 훨씬 큰 싸움을 해야 한다.

유성식 정치부장 ssyo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