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레이스에 ‘오바마 열풍’이 뜨겁다. 민주당 경선 첫 무대인 아이오아 주 당원 투표에서 일약 선두에 오르는 이변을 연출한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은 오늘 뉴햄프셔 주 예비선거에서도 힐러리 클린턴 등 강력한 경쟁자를 따돌릴 기세다. 경선 마라톤을 더 지켜봐야겠지만, 초반 돌풍만으로도 세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오바마 돌풍은 그의 슬로건인 ‘변화’를 바라는 유권자의 욕구가 예상보다 강렬함을 일깨웠다. 공화당 집권 7년간 지속된 테러와 전쟁, 국론 분열과 갈등에 지친 유권자들은 나라 안팎에 깊이 파인 상처의 치유를 외치는 오바마의 참신한 매력에 빠져드는 모양이다. 특히 무당파와 공화당 유권자의 지지가 급증하는 추세가 예사롭지 않다.
■ 오바마 돌풍과 '희망' 메시지
이런 ‘오바마 현상’을 분석하는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희망’의 키워드를 지적한다. 단순히 변화를 외치는 것을 넘어, “미국과 세계를 치유하겠다”는 다짐으로 신선한 감동과 따뜻한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 ‘희망’ 메시지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는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희망의 정치’를 주제로 감동적인 기조연설을 하면서 전국적 인물로 떠올랐다. 그는 “세계가 미국을 경멸하고, 참전용사들은 다리를 잃은 채 돌아오고, 실업자와 노숙자가 넘치고, 의료 교육체계가 무너지고, 젊은이들은 폭력과 절망에 빠져있다”고 현실을 암울하게 묘사했다. 그러나 여느 정치인과 달리 곧 이어 낙관과 희망을 힘주어 이야기했다.
그는 “진보적 미국과 보수적 미국은 없다. 검은 미국과 흰 미국,
라틴계의 미국과 아시아인의 미국도 없다. 오직 미 합중국이 있을 뿐“이라며, 인종 계층 이념 정당을 초월한 화합의 전통을 일깨웠다. 또 노예와 이민자들이 역경과 불확실성을 딛고 일어선 바탕인 ‘굳센 희망’을 상기시켰다.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믿음과 희망이 신의 가장 큰 선물이자 미국의 초석이라고 역설한 것이다.
물론 ‘오바마 현상’의 취약함을 지적하는 견해도 많다. 정치 경 력이 일천한 데다 일자리 창출과 감세를 동시에 약속하는 포퓰리즘 경향을 보여, 본격 검증을 헤쳐나가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다.
경선이 거듭될수록 경륜과 조직 등에서 훨씬 앞선 클린턴 상원의원의 벽에 막힐 것으로 보는 견해가 아직은 유력하다.
그러나 유권자들이 ‘희망’ 메시지에 열광하는 모습에서 과거 정권 교체를 이룬 지미 카터와 빌 클린턴을 떠올리는 이도 많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사석에서 올 대선이 1992년의 자신처럼 ‘희망의 후보’를 위한 선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고 한다. 그 후보는 힐러리가 아닌 오바마라는 시각이 확산되는 것은 아이러니다.
보수 쪽과 외부세계가 ‘오바마 현상’을 진지하게 탐구하는 모습은 한층 특기할 만하다. 유럽 언론은 미국의 보수논객이 오바마를 미국정치와 사회를 억누르고 있는 ‘문화전쟁’을 종식시켜 미국을 바꿀 유일한 후보라고 주장한 사실을 부각시켰다. 오바마의 비전이 국제 갈등을 완화할 것이란 기대를 부풀리고 있는 것이다.
■ 과거 청산보다 미래 비전 긴요
떠들썩한 논란에서 첫 흑인 대통령 출현을 점치기는 이르다. 그보다는 클린턴이 오바마의 빛에 가린 원인을 진단한 영국 언론의 논평에 눈길이 머문다. 클린턴은 믿음직한 후보지만, 대결과 보복 구도를 벗어나기 힘든 기성정치의 틀에 갇혀 있다. 오랜 분열에 싫증 난 유권자들은 이 때문에 화합과 희망의 미래 비전을 역설하는 오바마에 이끌린다는 풀이다.
이런 진단은 대선이 끝난 우리 사회와 이명박 당선인 주변이 여전히 귀 기울일 만하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적실하게 일깨웠듯이, 지난 상처를 치유하려면 화합과 희망을 늘 열심히 이야기해야 한다. 말보다 일을 하겠다는 다짐에 얽매여, 곳곳에서 갈등과 적대가 다시 고개 드는 것을 무심히 넘겨서는 안 된다. 우리 국민도 ‘경제’를 넘어 ‘희망’을 선택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수석논설위원 btk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