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활동이 본격화하면서 이명박 정부의 정책 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는 뉴스들이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대입 자율화 방안이 서둘러 발표되고, 대운하가 강행될 것이란 보도가 나오는가 하면, 국정홍보처는 폐지될 것이 확실하다는 보도도 나왔다. 정권이 바뀌면서 흥분한 탓인지, 이제 이 나라의 언론은 비판적 감시 기능을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하나같이 인수위의 발표를 액면 그대로 옮기며 찬가만 불러댈 뿐이다.
또 한 번의 교육 정책 변화로 인해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느낄 당혹감은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자율화가 백 번 옳은 방향이라며 손뼉치기 바쁠 뿐, 대교협이나 시도 교육청이 어느 정도의 역량을 갖춘 기관인지 검증을 시도하는 언론사는 없다. 소중히 보존해야 할 백두대간을 파헤쳐 환경 재앙을 일으킬 수도 있는 대운하 건설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기획 보도 하나 없다.
특히 국정홍보처 관련 보도를 보면 한마디로 가관이다. 숭고한 “언론 자유”를 짓밟고 “대못질한” 국정홍보처가 이제 폐지된다고 하니, 그럴 줄 알았다, 참으로 고소하다는 투의 기사가 대부분이다. 지금 이 국면에서 기자실 복원이란 이슈가 대다수 독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만큼, 1면 기사로 실릴 만큼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필자가 보기에 정작 중요한 미디어 관련 이슈들은 언론에 의해 아직 제대로, 심층적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미디어 정책은 차기 정부 출범과 함께 설립될 21세기 미디어위원회(가칭)에서 결정하기로 한 때문인지, 인수위 조직을 보면 경제 영역에는 두 개의 분과에다 심지어 특위까지 있지만 미디어와 문화 영역에 대해서는 그다지 비중을 두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독립된 분과는커녕 사회교육문화 분과의 인수위원이나 전문위원에 미디어 전문가는 단 한 명도 임명되지 않았다. 여기서 미디어와 문화를 바라보는 차기 정부의 시각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인수위가 미디어 정책과 관련하여 뉴스 메이커 역할을 자임하지 않는다고 해서 언론 역시 가만 있는다는 것은 분명 직무유기다.
허구헌날 인수위가 쏟아내는 보도자료만 그대로 받아쓰고 있을 작정이 아니라면, 어째서 바로 자신들의 문제인 미디어 산업의 미래 지형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지 이해할 길이 없다.
현재 미디어 산업 분야의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신문과 방송의 겸영 허용, 방송위와 정통부의 통합, MBC와 KBS2TV의 민영화 등이다. 하나같이 중요한 문제들이지만 이중에서도 특히 우려되는 것은 공영방송의 민영화 문제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문화적 관점도 아니고 그렇다고 경제적, 산업적 관점도 아닌 비이성적 정치 논리가 개입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한나라당과 차기 정부가 추구하는 MBC의 민영화란 것이, 그들의 주장처럼 뉴미디어 시대에 방송의 경쟁력 강화와 구조적 안정성을 위한 것이고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의 뚜렷한 차별화를 통한 역할 분담을 위한 것이라면, 향후 우리 사회에서 방송의 공적 역할은 어떻게 담보될 수 있을 것인지 대안이 마련되어야 하며 미디어를 포함한 문화 산업 전반에 대한 장기적 비전 역시 설득력 있게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한나라당의 민영화 논의는 그간 자신들에게 비판적이었던 MBC 길들이기 차원이라는 혐의를 벗을 수 없을 것이다.
MBC 역시 지금의 모호한 태도를 벗어나 한나라당의 민영화 안에 대해 분명한 입장 표명을 해야 한다. 새 정권의 일방적 민영화 추진은 결국 시장의 논리, 거대 자본의 논리에 의한 미디어 부문과 문화 부문의 식민화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한국외국어대 언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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