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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화 시대 대기획-이제는 경제다] 2부 (3) 영국을 버리고 세계를 얻다-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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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화 시대 대기획-이제는 경제다] 2부 (3) 영국을 버리고 세계를 얻다-영국

입력
2008.01.08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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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 동부 템스강변에 위치한 ‘카나리 워프’(Canary Wharf). 20여년 전만 해도 쓸모없는 부둣가였던 이곳은 지금 런던의 신흥금융중심지로 변모했다.

HSBC본사와 씨티그룹 유럽본부를 비롯해 미국ㆍ스위스계 은행, 그리고 2,600여개에 달하는 헤지펀드까지. 글로벌화 정도로 본다면 카나리 워프는 런던의 전통적 금융가로 영국계 금융사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시티’(City of London)보다도 훨씬 앞서 있다.

런던은 하나(시티)로도 부족해 금융중심지를 2개씩이나 갖고 있다. 시티와 카나리 워프를 중심으로 거래되는 외환규모는 하루 평균 1조4,000억달러(2006년 기준). 전 세계 외환거래의 3분의1이 런던에서 이뤄진다고 보면 된다.

서울외환시장과 비교하면 무려 40배 격차. 각국의 공적외환(외환보유액)에서 중동의 오일머니, 도쿄의 부동산자금, 러시아 마피아의 검은 돈까지 모두 런던을 통해 전세계로 거래된다.

요즘 “대영제국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옛 제국을 해군이 지탱했다면, 21세기 대영제국은 자본과 금융이 떠받치고 있다. 런던은 지난해 금융 허브도시 경쟁력지수(GFCI)에서 806점을 받아, 월스트리트의 뉴욕(787점)을 제쳤다. 금융서비스업이 견인해온 영국 경제는 프랑스나 독일 등 제조업 중심의 다른 유럽 선진국과 달리, 지난 10년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영국의 금융경쟁력은 ‘빅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6년 당시 마가렛 대처총리는 ▦주식매매 고정수수료 폐지(수수료 자율화) ▦은행과 증권회사간 장벽철폐 ▦외국 금융회사의 자유로운 시장참여 등을 골자로 하는 이른바 ‘금융빅뱅’ 법안을 전격 입안했다.

금융빅뱅의 키워드는 개방과 경쟁. 런던국제금융센터(IFSL)의 던컨 맥킨지 박사(경제학)는 “대처 수상은 전 세계 모든 투자은행들이 영국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시장을 열었다”고 강조했다.

물론 후유증도 컸다. 무한 경쟁으로 군소 금융사들이 대거 도산했고, 1992년엔 영국 파운드화가 조지 소로스의 헤지펀드로부터 집중공격을 받아 중앙은행(영란은행)마저 휘청대기도 했다.

중요한 점은 그래도 자율화와 개방화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1997년 노동당이 정권을 이양 받았지만, 경제ㆍ금융정책 만큼은 대처수상이 이끌었던 보수당의 기조를 거의 그대로 계승했다.

‘제3의 길’을 모색한 토니 블레어의 정책은 ‘인간의 얼굴을 한 대처리즘’이라고 불렸고, 고든 브라운 현 총리도 이 점에선 궤를 같이 한다. 맥킨지 박사는 “특히 금융허브에 대해서는 보수당이 터를 닦았다면 노동당이 꽃을 피운 셈”이라고 설명했다.

시티와 카나리 워프는 20년에 걸친 개혁 개방의 결실이다. 각각 우리나라의 ‘구’ 정도 크기밖에 안되지만, 이 두 곳의 경제적 기여도는 어마어마하다. 2004년 기준 시티와 카나리 워프를 중심으로 한 런던의 금융종사자수는 31만6,000명 정도.

전체 런던인구수의 4.5%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창출해내는 부가가치는 런던 총생산량(GDP)의 21.7%에 달한다. 한편으론 관광, 다른 한편으론 금융이 런던, 나아가 영국을 먹여 살린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더 많은 자본을 받아들이기 위한 영국의 개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지난 10월 앨리스터 달링 재무장관이 발표한 2008~2009 회계연도 예산안 개요(Pre-Budget Report)에 따르면 ▦상속세 면세한도 2배 이상 상향조정 ▦3단계(10, 20, 40%) 자본소득세 18%로 단일화 ▦법인세율 2% 인하 등이 추가로 추진되고 있다.

데이비드 브라운 IFSL 부사장은 “어느 정도의 입지를 굳힌 영국 역시 자본소득ㆍ이동 등에 대해 수십년간 지속적으로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며 “만일 한국이 금융허브를 꿈꾼다면 더욱 획기적이고 꾸준한 규제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러·印최대갑부가 런던으로 간 까닭은

런던그라드-. 러시아 갑부들이 하도 런던에 많이 살아 생겨난 말이다. 러시아 최대 갑부이자 프로축구 첼시구단주인 로만 아브라모비치를 비롯, 재벌급만 200여명이 런던에 살고 있다.

러시아만이 아니다. 세계 최대철강사인 미탈의 오너이자 인도 최고 갑부인 락시미 미탈도 런던에 거주한다. 10억 달러 이상의 재산가 23명이 런던에 살고 있는데, 이중 11명이 외국인이다. 이에 반해 뉴욕에 거주하는 10억달러 이상 부자 34명은 대부분 미국인이다. 런던은 확실히 세계적 부호들이 가장 선호하는 도시다.

왜 그럴까. 이유는 세금에 있다. 영국에 영구주소가 없는 외국인(Non-Domicile)은 해외에서 발생한 배당금, 부동산소득, 연금, 근로소득 등에 대해 세금을 내지 않는다. 영국은 또 100여개 국가와 이중과세 방지협정을 체결, 외국인들이 세제상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했다. 이 혜택을 누리고 있는 외국인들은 약 11만5,000명으로 영국 거주 부자의 약 60% 정도다.

물론 "갑부가 자기 집 청소부보다도 세금을 덜 낸다"는 비난 여론이 있다. 때문에 정치권에서 과세에 대한 논쟁이 끊이질 않고 있지만, 그래도 영국은 외국자본, 외국부자에 대해 가장 관대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2006년 런던증시는 기업공개(IPO)에서 뉴욕증시를 앞질렀다. 엔론 사태를 계기로 미국이 기업규제를 강화하자, 런던은 오히려 외국기업에 세제혜택을 제공한 것. 러시아와 중동계 기업 및 금융기관들이 기업공개시장으로 일제히 런던을 선택하면서, 오일머니가 대거 유입되고 있다. 이들로 인해 영국경제가 탄력을 받고 있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런던은 금융허브이자 머니허브이고, 곧 부자들의 허브이기도 하다.

삼성경제연구소 김득갑 박사는 "아시아에서도 급증하는 신흥부호들을 유치하기 위해 각국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면서 "부자들을 끌어들이려면 자본소득과 근로소득간 차별을 없애는 방향의 조세개혁과 금융산업 육성, 부동산시장 규제완화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런던 국제금융센터 패트릭 램 사장

"금융허브가 되기 위해서는 한국기업이 글로벌화되려고 하기보다 글로벌 기업이 한국으로 오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

런던 국제금융센터(IFSL)의 패트릭 램(사진) 사장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는 삼성전자 같은 제조업의 훌륭한 성공사례가 있지만 이를 금융 서비스업에 그대로 적용하려 해서는 안 된다"며 이 같이 밝혔다. IFSL은 런던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국내외 131개 금융사들의 대표체로, 대외홍보 및 금융업 발전촉진을 위한 제반 업무를 담당한다.

램 사장은 "영국이 금융허브가 된 핵심비결은 꾸준한 개방성"이라며 "현재 영국의 100만 금융종사자 가운데 25%가 외국인이며, 런던 소재 금융사의 60%가 외국기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건물 많이 짓는다고 금융허브가 되는 것은 아니고 사람(전문인력)이 같이 와야 한다"면서 "글로벌 시대에 금융인은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이므로 외국인에 '프렌들리(friendly)'한 환경 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영국이 보수당 10년, 노동당 10년 동안 꾸준히 개혁개방 정책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를 묻자, 그는 "우선 80년대 암울했던 경제상황에 대한 정치인과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을 뿐 아니라 프랑스나 한국과 달리 정치권에서 경제에 개입하는 전통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램 사장은 "영국에서는 자국기업보다 외국기업들이 이득을 챙긴다고 '윔블던 효과(윔블던테니스대회에서 외국선수가 늘 1등하는 것을 빗댄 말)'라며 비판하는 이도 있다"며 "그러나 국가간 상호의존성이 매우 높아진 지금 영국이 1등 하는 게 중요치 않다"고 말했다.

문준모 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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