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최홍만에게는 참 미안한 말이지만 1분 56초면 그래도 오래 버틴 것이다. 지난해 마지막 날 열린 표도르(31ㆍ러시아)와의 격투기 대전은 사실 흥행용이지 진짜 상대가 될 거라고 본 전문가는 없었을 것이다.
주짓수와 복싱으로 무장한 2m 184kg의 거구 줄루징요(브라질)를 얼음주먹 한 방으로 26초 만에 케이오시킨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최홍만이 1분만 버텨도 대성공이라고 했다.
지금은 표도르라고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효도르라고 했다. Fyodor를 일본 사람들이 부르는 식으로 따라 불렀기 때문이다. 표도르는 이름이고 성은 에밀리아넨코다.
■종합격투기 프라이드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6년째 보유 중인 표도르는 지금까지 불의의 부상으로 딱 한 번 패한 것을 빼고는 28전 27승을 기록하고 있다.
세미 슐트, 안토니오 누게이라, 크로캅 같은 최고의 선수들이 줄줄이 그의 발 아래 무릎을 꿇었다. '60억 분의 1의 사나이'니 '마지막 황제'니 하는 별명이 과연 명불허전이다.
앞으로 한 세대 안에 이런 대가가 다시 나올까 싶다. 표도르의 진정한 매력은 그 잔잔함에 있다. 격투기 선수 치고는 보통 체격(183cm 106.5kg)이다. 울퉁불퉁한 근육도 없다.
■인상도 그렇지만 옆집 아저씨 같은 물살이다. 염색이나 요란한 문신도 하지 않는다. 링 위에 올라가서도 상대를 겁먹게 하려고 붉으락푸르락 하거나 노려보지 않는다. 그저 평온한 눈길에 한두 번 살짝 목을 돌리는 정도다.
그렇다고 오만이 묻어나지도 않는다. 평소에 말도 별로 없다. 가끔 살짝 웃는데 그야말로 살인미소다. 잘하는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는 늘 그저 "열심히 운동하는 것"이라고 한다. 정말 그렇다. 각종 전술, 웨이트 트레이닝 외에 매일 두 차례씩 12~15km를 뛴다.
■보로노프 코치도 10살 때 처음 본 표도르를 이렇게 설명한다. "신체적으로는 좀 약한 편이었어요. 그라운드 기술 재능도 없고. 대신 강점은 인내력과 강한 의지였지요." 특수부대 출신으로 아시는 분이 많은데 소방 병과에서 근무했다. 아내와 외동딸을 끔찍이 생각하는 가정적인 남편이다. 여가시간에는 책을 읽고 음악을 감상하고 그림을 그린다.
그를 볼 때마다 '아는 사람은 말이 없고, 말 많은 사람은 알지 못한다(知者無言 言者無知)'는 노자의 경구가 떠오른다. 새해에는 우리 사회 각 분야에도 이런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60억 분의 1의 사나이에게 경의를 표하며.
이광일 논설위원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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