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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명품 브랜드의 마케팅에 속고 있다

입력
2008.01.08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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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초반의 직장여성 ‘이명품’씨. 오늘은 대학 동창회가 있는 날이다. 그동안 사 모았던 명품들을 뽐낼 절호의 기회다. 몸에 걸친 옷, 액세서리의 가격만 줄잡아 1,000만원. 월세 보증금보다 비싼 명품들로 치장한 이씨는 약속 장소인 모 호텔 커피숍에서 동창들을 만났다.

그런데, 오! 이런. 유니폼도 아니고 초등학생들이 학교 가방을 멘 것도 아닌데, 모인 대학 동창들이 같은 옷에 같은 가방이라니. 이명품씨의 명품 수집은 이제 끝이 난 걸까.

하지만 웬걸, 그녀는 ‘이제부터는 흔치 않은 디자인만 사겠다’는 굳은 다짐을 새롭게 했다. 이렇듯 명품에 집착하는 이씨는 아직도 “명품은 유구한 역사가 있으며, 장인의 손길이 제품에 녹아 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이씨가 굳게 믿고 있는 ‘명품의 역사’와 ‘장인의 손길’은 과연 믿을 만한 것일까. 대단히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녀는 명품 업체의 마케팅 전략에 속고 있다. 다년간 명품 업체들의 마케팅 전략을 연구해온 마케팅 컨설턴트 김호열씨는 “명품을 선택하는 이유로 유구한 역사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알고 보면 기껏해야 수십년에 불과한 업체들이 많다”고 말했다.

프라다의 역사는 30년, 페라가모는 80년, 샤넬은 100년을 넘지 못한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그는 또 “핸드백으로 크게 성장한 한 업체는 말 안장을 만들던 시절까지 끼워 넣는 등 말도 되지 않는 역사를 마케팅에 이용하는 경우가 다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명품들이 광고하는 장인의 손길, 수작업 실태는 어떨까. 김씨는 “유명 브랜드의 가방 같은 인기 품목 한 가지만 해도 1년에 1만 개 이상이 팔리는데 수십 종에 달하는 제품을 고작 수백 명의 장인이 일일이 손으로 만들 수는 없을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바느질 몇 번, 최종 검사 등만 장인이 하고 ‘수공품’ 딱지를 붙인다는 얘기다.

한 가지 더. 한국 업체가 만든 제품에 명품 브랜드 상표만 붙인 ‘한국산 명품’을 고가에 판매하는 경우도 있다. 한 마케팅 전문가는 “C사의 경우 한국 업체에 디자인부터 생산까지 다 맡긴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이것은 명백한 소비자 기만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명품 업체들의 대단한 마케팅 전략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고가의 명품을 살 수 없는 20대 젊은층에게 다가가기 위해 오리지널보다 값싼 서브브랜드를 내놓고 잠재적 고객 끌어들이기에 나선다. 17만원짜리 티파니 딸랑이, 14만원짜리 구찌 지우개, 7만5,000원짜리 에르메스 연필 등에 열광했던 어린이가 성인이 되면 명품 핸드백에 자연스럽게 손이 가게 되는 식이다.

이런 모습을 감추기 위해서일까. 대부분 명품 업체들의 홍보실은 ‘인터뷰 사절, 사진자료 미공개’ 전략을 고수한다. 언론과 일정한 거리를 두겠다는 것이다. 하긴 이들 업체들의 본사에서는 한국을 ‘유행 후진국, 판매 선진국’으로 판단하고 있다니, 그럴 만도 할까.

한국은 뉴욕이나 파리처럼 세계의 유행을 주도하지는 못하지만 제품 판매에서는 큰 이익을 남길 수 있다는 얘기다. 김호열씨는 “한국을 팔아먹기에만 좋은 시장으로 판단한 나머지, 한두 가지 모델을 싼 가격에 대량공급하고 있다”면서 “희소성이라는 명품의 기본 조건도 포기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명품씨의 동창생들이 너도나도 똑같은 가방을 들고, 똑 같은 목도리를 걸치게 된 이유가 여기 있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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