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으로 진입하는데 전동차로 몸을 던지거나 선로 한복판에 가부좌를 튼 사람이 있다고 해보세요. 또 그 사람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어떻겠습니까. 사는 게 아무리 힘들어도 새해에는 지하철에서 자살하는 분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자년 새해가 시작된 1일 새벽 5시30분. 서울 지하철 5호선 방화역을 출발해 상일동으로 향하는 새해 첫 전동차(5009호)의 박정원(36) 기관사는 삶이 어려워도 용기를 내 힘차게 살아가자고 말했다. 12년 전 도시철도공사에 입사한 뒤 줄곧 5호선 전동차를 몰았고 그 앞으로 뛰어든 승객은 한명도 없었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은 적이 없다. 쥐띠 해가 다시 쥐띠 해로 바뀌는 동안 쥐띠의 박 기관사가 달린 거리는 25만km. 지구 여섯 바퀴에 해당하는 그 거리를 무사고로 달렸으니 베테랑으로 불릴 만 하다.
박 기관사는 “자살 사고를 경험한 기관사 가운데 일부는 그 공포 때문에 공황장애를 겪기도 하고 심지어 자살도 한다”며 “그 어떤 기관사에게 물어도 자살 사고를 겪지 않는 게 새해의 바람일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의 발’인 지하철의 안전운전을 위한 근무 환경 개선도 희망 사항이다.“불규칙한 출ㆍ퇴근 시간으로 치면 세계 최고 일겁니다. 출ㆍ퇴근 시간은 물론 전동차 탑승 시간이 같은 날도 거의 없습니다. 출근 시간만 봐도 오늘은 오전 5시 1분, 내일은 7시 33분, 모레는 9시 39분입니다.” 기관사들이 수면장애를 달고 사는 이유라고 했다.
운행 중 발생하는 생리적인 현상에도 큰 고통이 따른다고 했다. 박 기관사는 “우유를 좋아했지만 마시면 언제 ‘신호’가 올지 몰라 끊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많은 기관사들이 배가 고파도 아침을 굶는다고 한다.
새해 첫날 휴일 임에도 불구하고 승강장에는 이른 시각부터 많은 승객이 나와 있었다. 박 기관사는 “첫차 승객의 표정이 가장 어둡다”며 “노숙인이거나 막노동, 청소 등으로 힘겹게 살아가는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기관차를 운전하다 보니 이제는 승강장에 서있는 사람들의 표정까지 읽을 수 있게 됐다는 그는 마지막 희망 하나를 추가했다. “새해에는 경기가 좋아지고 사회 분위기도 밝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제 손님들 표정도 더 환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글ㆍ사진=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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