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김정원(32)은 지난 두 달 동안 전국을 여행했다. 10월 28일 서울에서 출발해 12월 23일 부산까지 12개 도시를 돌았다.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 과 베토벤 소나타 14번 <월광> , 드뷔시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을 들고 1만명이 넘는 청중과 만났다. 29일 세종체임버홀에서 열리는 ‘고별 콘서트’만 남겨놓은 김정원을 만나 여행 이야기를 들었다. 베르가마스크> 월광> 전람회의>
“전주 공연에는 여고생들이 많이 와서 마치 팝 콘서트처럼 뜨거운 분위기였어요. 입장부터 환호성이 나오더니, 사인회 때는 기물이 파손될 정도였죠. 부산 공연 전날엔 하루종일 바다를 보며 충전을 했어요. 바다가 없는 오스트리아에 살다 보니 바다를 너무 좋아하거든요. 덕분에 컨디션이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긴 여행으로 지쳤을 법도 한데, 김정원은 뜻밖에 생생했다. 평소 잔병치레가 많은 그는 이번 투어 완주를 위해 올해 초부터 운동을 하고, 담배도 끊고 식단까지 바꿨다고 했다.
원주 공연 후 심한 감기에 걸리긴 했지만, 희한하게 다음 공연 전에 말끔히 나았다. 같은 레퍼토리로 짧은 기간에 12회의 공연을 하는 것이 지겹진 않았을까. 김정원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도 했는데 지역마다 다른 청중들의 반응 덕분에 지치지 않고 매번 새로운 기분으로 연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12개 도시 투어는 클래식 피아니스트로는 처음이었다. 아무리 ‘꽃미남 피아니스트’로 불리며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니는 김정원이지만, 한국 클래식 시장 상황에서 무모한 도전이라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솔직히 저도 겁이 났는데 감사할 만큼 많은 분들이 와주셨어요. 클래식 저변 확대에 조금이나마 기여했다고 생각하니 뿌듯합니다.” 이번 투어의 목표는 ‘클래식 알리기’였다.
그래서 프로그램도 친근하고 대중적인 작품으로 짰고, 지방 중소도시까지 일정에 포함시켰다. “제 공연을 통해 클래식에 대한 재미와 자신감을 얻어서 다른 음악회에도 갔으면, 다음에는 1명이라도 더 데리고 갔으면 하는 바람이었죠. 실제로 ‘난생 처음 클래식 공연장에 왔는데, 클래식이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다’는 관객이 많았어요.”
김정원은 대중과 가장 가까이 있는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다.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 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했고, ‘김정원과 친구들’이라는 이름으로 대중 음악인들과 함께 작업하고 있다. 보수적인 클래식 음악계에서 삐딱한 시선을 받지는 않을까. 김정원도 “저한테 상업적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호로비츠를>
하지만 이런 활동에 대한 그의 생각은 뚜렷했다. “영화 때문에 피아니스트 김정원을, 작곡가 라흐마니노프를 알게 됐고, 그를 통해 클래식 애호가가 됐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스포츠 문외한이던 아내도 데이비드 베컴을 좋아하더니 이제는 열혈 축구팬이 됐어요. 순서는 중요하지 않아요. 음악을 변질시키지 않는다면 방식은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그간 유럽에서 주로 활동해온 김정원은 내년 6월 뉴욕 카네기홀에 데뷔한다. 체코 체스키 크롬노프 음악제에도 초청받았고, 오스트리아 정부 주최로 빈에서 열리는 음악제에서는 빈 심포니와 협연할 예정이다. 물론 4월 김정원과 친구들 공연, 10월 MIK 앙상블 공연 등을 통해 한국 관객과도 만난다.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