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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신춘문예/ 김영미, 재개발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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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신춘문예/ 김영미, 재개발 아파트

입력
2008.01.02 05:46
0 0

김영미

날마다

옥수수 이 빠지듯

불 꺼진 창이 늘어간다

관리실 아저씨는

떠나간 집마다

커다랗게 검은색으로

×를 그린다

이제 통로엔

딱, 우리 집

하나 남았는데

갈 곳을 정하지 못해

날마다

조바심하는 엄마

처음으로

나는 커다란 ×를

받고 싶었다.

“중학교에 입학했더니 당시로선 최신식 도서관이 있었어요. 동문 선배가 엄청난 양의 책과 함께 기증한 시설이랍니다. 너무 어려운 책 빼곤 거의 다 읽고 졸업했죠. 사서 담당 선생님이 신간 들어오면 제게 먼저 보여줄 정도였어요. 그 때 읽은 책이 1만 권쯤 되려나.”

김영미(54)씨는 “책이 나를 키웠다”고 말했다. 장남이던 아버지 집에서 대학을 다녔던 숙부의 책을 멋모르고 들추던 어린 시절에 들인 독서 습관은 중학교를 거쳐 평생의 취미가 됐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고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한 김씨가 첫 월급을 받아 산 것은 부모님 내복이 아닌, 어려운 시절을 위로했던 5권짜리 <빨간머리 앤> 이었다. 요즘도 바쁜 시간을 쪼개 자주 도서관을 찾는다.

목포 출신인 김씨는 1979년 결혼하면서 현재 살고 있는 광주로 이사했다. 유치원 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경험을 바탕으로 83년 어린이집을 설립, 현재 9명의 교사를 둘 만큼 규모를 키웠다. 여기서 얻은 수입으로 결혼 당시 석사 과정 공대생이었던 대학교수 남편과 세 자녀를 뒷바라지했다.

목전의 생계 꾸리기에 분주했지만 문학에 대한 동경은 잔열처럼 몸을 덥혔다.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됐다 싶어 80년대 후반부터 지역 문학 동인에 가입했지만 창작에 매진할 엄두는 내지 못했다. 하지만 낭중지추였을까, 김씨의 가능성을 알아보는 ‘밝은 눈’들이 나타났다. “2, 3년전부터 손동연, 이경자 선생 등 명망있는 작가들이 내 작품을 칭찬했다. 발상이 참신하고 동심(童心)이 있다고 했다. 힘을 얻어 열심히 해보자는 결심이 섰다. 창작 스터디 그룹에 들고 대학원에도 진학했다.”

김씨의 응모작은 재개발 아파트, 건설노동자 등 사회의 그늘진 현실을 소재로 했다. 이 과감한 소재 선택에서 50대에 작가로서 첫발을 내딛는 자의 넓은 시야가 느껴진다. 김씨는 “아쉽지만 늦지 않았다”고 말했다. “젊었을 땐 장래에 대한 불안함 때문에라도 요즘처럼 창작에 몰두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 어머니가 겪은 봉건적 삶부터 인터넷 사회까지 두루 경험했다. 직접 보고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더 공감가는 작품을 쓰도록 노력하겠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당선소감 "멀리 돌아온 길… 이제 꽃피우려는 듯"

참으로 멀리 돌아온 길이었다. 하지만 날마다 세월에 발길을 묻으면서도, 한 번도 문학에의 짝사랑을 멈춘 적은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 따라가니 초등학교 때 새봄을 기다리며, 유리창에 입김을 불어넣으며 꿈을 썼던 시가 생각난다. 이제 그때의 씨앗들이 하나 둘씩 꽃을 피우나 보다. 그 길을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이 그리워하며 아파했던가?

당선소식을 듣고 어찌나 기뻤던지, 밤잠을 설쳤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까지 유효하다. 며칠이 지난 지금, 당선소감을 쓰는 이 순간까지 아직 가슴이 벅차 하고 싶은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이 말들을 삭혀 다시 시를 쓰리라….

하지만 기쁨만은 모두와 나누고 싶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광주대 스터디를 지도하며 고락을 함께 해 준 이성자 교수님과 신춘에 꼭 응모하라던 이은봉 교수님, 또 내 문학에 쉬지 않고 늘 물을 뿌려준 물뿌리개 동인들과 참신한 발상만이 시의 가장 큰 힘이라며 늘 가르침을 주신 손동연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또 소중한 친구 영희가 아직 병상에 있다. 새봄, 그가 하루 빨리 병마와 작별하라고 이 기쁨의 기운을 입혀주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을 있게 해준 심사위원님께 큰절을 하고 싶다. 좋은 글로 끝까지 보답할 것이다.

●김영미(金英美)

1953년 전남 목포 출생

광주대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

2006년 황금펜아동문학상 동시부문 당선

현 광주광역시 이현어린이집 운영

▦심사평 "대상 바라 보는 따스하고 진지한 시선 호평"

이번 투고된 작품은 모두 680편이었다. 작품 수로는 적지 않은 분량이었으나 생각 외로 이렇다 할 작품이 눈에 띄지 않았다. 안이한 동요적 발상에 기댄 작품이 많았고, 전반적으로 기존 동시의 관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수준이었다.

일차로 완성도와 참신성에서 비교적 점수를 줄만한 작품 10편을 골랐다. 그 10편을 놓고 머리를 맞댄 결과 최종 세 편이 가려졌다. <바지랑대와 빨랫줄> <경운기 소리> <재개발 아파트> 가 그것이다.

<바지랑대와 빨랫줄> 은 바지랑대와 빨랫줄이라는 사물을 통해 삶의 지혜를 건네주는 솜씨가 남다른 작품이었다. 그러나 정작 소재가 요즘 아이들의 생활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경운기 소리> 는 자연스러운 의성어 구사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경운기 소리를 적절한 시늉말로 실감나게 표현한 점이 흥미를 끌었다. 그러나 함께 보내온 작품들은 비슷한 성취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재개발 아파트> 는 무거운 현실을 어린이의 눈높이로 자연스럽게 풀어낸 작품이다. 새로운 시적 발견인가 하는 점에서는 다소 주저되는 면이 있긴 하지만,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스하고 진지한 점이 돋보인다. 함께 보내온 작품들도 역시 일정한 수준을 갖추어 우리는 망설임 없이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올리는데 합의했다. 자신의 장점을 더욱 갈고 닦아 아이들의 마음을 붙잡을 수 있는 시를 많이 보여주기 바란다.

심사위원=안학수(동시작가)ㆍ김제곤(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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