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의 암살로 가뜩이나 불안한 파키스탄 정국이 총선을 앞두고 소용돌이 치고 있다. 부토 전 총리가 이끌던 파키스탄 최대 야당인 파키스탄인민당(PPP)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무샤라프 정부와 정면 충돌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부토 전 총리는 군사독재로 비판 받아온 무샤라프 대통령과 권력분점 합의를 통해 10월 귀국, 무샤라프 정권 하에서 총리 직을 수행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이에 대해 PPP의 일부 간부들은 부토 총리의 행보를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러나 무샤라프 대통령이 집권연장을 위해 지난달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야당 및 사법부 인사들을 자택 연금하는 등 탄압에 나서자, 부토는 입장을 바꿔 ‘반 무샤라프’ 운동의 선봉에 서며 야당 정치인으로서 화려한 재기를 하는 듯 했다.
부토 전 총리는 “파키스탄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겠다”며 무샤라프 대통령에게 군 통수권 포기와 국가비상사태 해제를 요구하며 대립각을 세워 왔다. 또 무샤라프 대통령의 최대 정적인 나와즈 샤라프 전 총리가 이끄는 파키스탄무슬림리그(PML_N)와 연합, 총선 불참을 모색해 무샤라프 대통령과 갈라선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샤리프와의 연대가 무산된 뒤 부토 전 총리는 총선 출마를 선언하며 독자적인 선거 운동을 벌여왔다.
민간 대통령으로 취임한 무샤라프 대통령에게 부토 전 총리는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한 때 ‘적과의 동침’으로 불리면 미국의 중재 하에 손을 맞잡기도 했으나 이번 총선에서 부토 전 총리의 PPP가 승리할 경우, 무샤라프 대통령은 정국 주도권을 부토 전 총리에게 뺏기게 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부토 전 총리의 귀국 당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에도 무샤라프 대통령의 명령을 받은 파키스탄정보부(ISI)가 개입했다는 풍문이 돌기도 했다.
부토의 사망으로 파키스탄 내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이 준동, 정국 혼란을 가중시킬 가능성도 높아졌다. 이들은 자신들이 반대하는 무샤라프 대통령과 권력분점을 합의했다는 이유로 부토 전 총리에게 암살 위협을 공공연하게 밝혀왔고 총선 저지 운동을 벌여왔다. 따라서 무샤라프 정권이 이번 사고의 처리에 몰두하는 동안, 자신들의 거점인 페샤와르 지역을 중심으로 반 정부 활동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날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는 또 다른 야당 지도자인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를 노리는 총격 사고가 발생, 샤리프 지지자 4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샤리프 측은 “이번 총격사고는 무샤라프 지지자들의 소행이다”고 강력히 비난, 같은 날 발생한 부토를 겨냥한 테러와의 연관성 여부도 논란거리다.
이로써 무샤라프 정부는 집권 이후 최대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무샤라프 정부는 향후 PPP를 중심으로 한 야당 세력의 반정부 운동과 지방에서의 이슬람 급진세력의 군사행동까지 진화해야 하는 사면초가 상황에 놓이면서 파키스탄의 정국은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안개 속으로 빠졌다.
김회경 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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