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지성이었던 프랑스 작가 앙드레 말로는 예전 우리 전통미술품이 파리에서 전시됐을 때, 일부러 저녁 시간에 전시장을 찾았다. 20일자 이 '지평선' 난에도 언급한 바 있는 백제의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을 감상하기 위해서였다.
관람객이 적은 시간을 택해 두 시간에 걸쳐 충분히 감상한 그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불상"이라는 평을 남기고 전시장을 떠났다. 평생을 박물관인으로 보냈던 최순우의 전집에 들어 있는 한 토막의 자랑스런 이야기다.
▦ 요즘 백제미술에서 받는 인상은 1960년대까지 교과서에서 배웠던 이미지보다 훨씬 우수하고 찬란하다. 인상이 변한 것은 그 후 71년 고도(古都) 부여 주변에서 무령왕릉이, 다시 93년 금동 용봉봉래산향로 등 귀중한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백제미술에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부여에는 우리 전통미술을 전승하고 교육하는 한국전통문화학교가 있다. 백제역사재현단지 안에 있는 이 학교는 문화재관리학과, 전통건축학과, 전통조경학과, 전통미술공예학과, 문화유적학과, 보존과학과 등 6개 학과로 구성돼 있다.
▦ 대통령령에 의해 2000년에 세워진 이 학교는 잘 짜여진 학사일정과 교육과정에도 불구하고 해를 거듭할수록 갈등이 커지고 있다. 당초 고등교육법 상 '각종학교'로 설립되었으므로, 졸업생에게 학사학위를 수여하고 총장ㆍ교수 등의 명칭을 사용하면서도 '대학'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학교'로 불리는 까닭에 재학생과 졸업생이 받는 정신적ㆍ현실적 불이익은 막심하다. 그들은 "고등학교를 두 번 다니냐?"는 질문도 자주 받는다. 전문가로 성장하고 싶은 졸업생들은 대학원 진학도 해야 하는데, '대학' 명칭도 사용치 못하니 '대학원' 명칭은 한참 더 멀다.
▦ 이 학교는 교수와 학생이 한 마음이 되어 '대학' 명칭 사용과 대학원 설립을 위해 법 제정운동에 나섰다. 그 결과 겨우 '한국전통문화대학교법 제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지금까지의 다른 예를 보면 경찰청은 경찰대학을, 농촌진흥청은 한국농업대학을, 국방부는 국방대학교를, 노동부는 기능대학을, 교육인적자원부는 한국교원대학을 각각 세운 바 있다. 단순한 명칭 때문에 전통문화를 창조적으로 발전시키려는 이들의 포부와 자존심을 짓밟을 이유는 없다.
박래부 논설위원실장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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