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보수)대 35(진보)’
17대 대통령 선거결과는 보수, 중도, 진보가 균형을 유지해오던 우리 사회의 이념추가 확연히 오른쪽으로 기울어졌음을 보여줬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보수진영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는 진보ㆍ개혁적인 지식인과 시민단체들에게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단순히 노무현 정권의 실패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혁신 과정을 거쳐 ‘선진화’라는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낸 보수진영과의 이론 투쟁에서 진보진영이 패배했다는 자성도 나온다. 대선 패배로 가시화된 ‘진보의 위기’ 시대와 맞물려 진보진영의 반성과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진보적 지식인들의 움직임이 꿈틀거리고 있다.
■ 진보 지식인들 잇단 토론회 개최
성공회대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는 다음달 4일 ‘대선에 대한 성찰과 진보개혁의 진로’를 주제로 토론회를 가진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와 김상곤 한신대 교수가 발제자로 나서 신보수정권의 출현배경과 개혁진영의 과제에 대해 논의한다.
조 교수는 “진보세력은 관념적이라는 보수세력의 질문에 대해 진보진영의 내향적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신자유주의적 성장국가를 모델로 내세운 보수담론에 대해 ‘고성장 국가’ 보다는 ‘사회적지속가능 국가’가 경제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모델이라는 것을 대중적 언어로 설득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 이태수 꽃동네 현도사회복지대 교수 등의 주도로 대선 기간 중 진보세력의 후보단일화를 추진했던 ‘진보와 개혁을 위한 의제27’도 28일 자체 간담회를 갖고 자기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대선 후유증이 너무 커 대안 논의보다는 대선 패배 원인분석에 대한 논의를 펼칠 예정이다.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대결에서 진보가 패배했다기보다는 1997년 이후 신자유주의 물결이 국민들 생활에 미친 영향이 지대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민주세력이 야당이 된 만큼 새로운 대안을 논의하기보다는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신보수주의 담론이 실효성이 있는지를 따지는 일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40대 진보학자들이 주축이 된 세교연구소도 다음달 18일 ‘개혁진영의 노선정립’을 주제로 포럼을 연다. 연구소는 이 포럼을 정례화해 진보개혁세력이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대안을 논의하는 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김대중ㆍ노무현 정부의 인력풀이었던 개혁적 시민단체들도 자기반성에 들어갔다. 지난주말 내부 대선평가회의를 끝낸 참여연대의 김민영 사무처장은 “실제로 우파적인 성격을 보였던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심판을 진보진영 전체의 실패로 규정하는데는 동의하지 않지만 진보ㆍ개혁적 시민단체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은 부인하지 않는다”며 “시민단체들은 국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주거, 교육, 의료, 대학등록금 등의 문제해결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계간지들도 대선 결과 다양하게 논의
학술 계간지들도 발 빠르게 대선특집을 준비하고 있다. 계간 창작과 비평은 2008년 봄호에 대선후보 단일화에 직접 관여했던 백낙청 편집인을 좌장으로 한 ‘대선의 평가와 향후 진보개혁의 과제’의 좌담을 기획했다.
염종선 창비 편집장은 “개혁과 진보세력이 민중과 서민들로부터 고립된 것이 가장 큰 과오”라며 “이러한 현상이 탄핵 전후부터 대선 전까지 진보진영의 분열로 이어져 결국 패배로 귀결됐다”고 분석했다.
황해문화가 ‘참여정부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주제로 마련한 봄호 특집도 자연스럽게 진보진영의 참패원인 분석과 대안 논의의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홍윤기 동국대 교수는 대선의 성패를 결정한 ‘노무현이 아니면 누구라도 좋다’는 식의 과도한 혐오증이 만연하게 된 원인을 분석하고, 강원택 숭실대 교수는 노무현 정부가 진보 이념 아래 우파적 정책을 편 정권(좌우왕복론)이었는지 아니면 실제로 진보적 이념기반이 없는 정권(이념부재론)이었는지를 따질 계획이다.
김성보 역사비평 주간(연세대 교수)은 “지난 10년간 보수진영이 자기반성을 통해 살길을 모색한 데 비해 진보진영은 현실에 안주한 것이
이런 결과로 나타났다”며 “중도든 진보든 관념이 아니라 실생활의 문제에 중심을 두고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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