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지난 10년 동안 사형 집행이 없어 사실상 사형폐지국이 됐습니다. 이제 사형폐지특별법안의 국회 통과를 위해 함께 힘을 모읍시다.”
살을 에는 추위가 닥친 30일 오후. 여의도 국회 본관 앞마당에 종교ㆍ인권ㆍ시민단체 관계자 등 100여 명이 모여 ‘사형폐지국 기념식’을 가졌다. 이들은 사형폐지국 선포문을 낭독하고 수감된 사형수를 상징하는 비둘기 64마리를 날리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우리나라는 이날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가 정한 ‘실질적 사형폐지국’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에서 마지막 사형 집행이 이뤄진 것은 23명의 사형수가 형장으로 보내진 1997년 12월30일. 이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는 사형 집행이 이뤄지지 않았다.
현재 국내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사형 확정자는 63명. 1993년 이후 64명의 사형이 확정됐지만, 올해 1월 김모씨가 심장마비로 숨지는 바람에 현재는 63명이 남아 있다. 전 세계 195개 국가 중 133개 국가가 사형제를 폐지했거나 집행하지 않고 있는 반면 미국 중국 등 66개 국은 사형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폐지 자체는 쉽지 않을 듯
국내 사형폐지 운동은 1974년부터 종교계와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앰네스티가 1989년을 ‘사형폐지의 해’로 정하고 대대적인 폐지 운동을 시작하면서 국내에도 사형폐지운동협의회가 생겼고, 지난해 5월 국가인권위원회는 국가기관으로는 처음으로 사형제 폐지를 공식 권고했다.
그러나 사형제가 쉽게 폐지되리라고 보는 이는 많지 않다. 2004년 12월 당시 열린우리당 유인태 의원 등 여야 의원 175명이 사형제 폐지 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법사위원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은 채 먼지만 쌓이고 있다. 앞서 2001년 16대 국회에서도 여야 의원 155명이 법안에 서명했지만 흐지부지됐다.
법무부도 “사형제를 원점에서 연구ㆍ검토하는 중”이라는 말만 하고 있다. 정성진 법무부 장관은 10월 서울대 특강에서 “개인적으로 폐지가 옳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여론과 세계적 추세 등을 감안해야 하는 주무 장관으로서는 ‘두고 보자’는 입장을 밝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명박 당선자 존치 쪽 무게
전문가들은 사형제 폐지는 결국 통치권자의 결단에 달린 문제라고 보고 있다. 인권위 인권정책본부 이발래 사무관은 “사형제를 두느냐 없애느냐는 여론조사 결과에만 의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도 1981년 사형제 유지를 요구하는 여론이 66%였는데도 사형제 폐지를 주도, 프랑스가 인권 선진국으로서 평가를 받는데 크게 이바지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대선 후보 시절부터 “사형을 선고할 수 있는 죄목을 줄이더라도 사형제 자체는 범죄 예방 이라는 국가의 의무를 감안할 때 유지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어 향후 어떤 결정을 내릴 지 주목된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이현정기자 agada2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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