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 천국이라는 프랑스에서도 내년 1월 1일부터 카페를 비롯한 음식점과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게 된다. 최근 이 기사가 여러 나라 언론에 눈에 띄게 소개된 것은 아마 흡연에 관대한 프랑스의 독특한 문화, 특히 카페로서는 상전벽해와 같은 엄청난 변화라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카페라고 하면 예쁜 마담에 인테리어가 고급스러운 양주 따위를 파는 비싼 술집쯤을 말한다. 여기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돼 룸카페가 되면 술값은 아마 룸살롱 뺨칠 것이다.
■하지만 원조 카페(Cafe)는 커피를 뜻하는 아랍어 카화에서 온 말로, 그냥 커피를 마시는 가게라는 뜻이다. 유럽에 처음 카페가 문을 연 것이 1647년이라니까 벌써 360년 역사를 자랑한다. 우리가 유럽의 카페에 대해 갖고 있는 전형적인 이미지를 독일 작가 헤르만 케스텐은 1959년 〈카페의 시인들〉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카페에서는 많은 예술가와 작가들이 독특한 분위기에서 서로 자극을 주고 받음으로써 창작의 온실이 되었다." 18세기 프랑스 사상가 몽테스키외는 "카페는 대화가 현실로 화하는 유일한 장소이고, 거창한 계획과 유토피아의 꿈이 태어나는 곳이다"라고 했다.
■18세기 말 프랑스에서는 당국의 단속을 피해 정치ㆍ사상가들이 카페에서 자유 평등 박애를 논했고, 19~20세기에는 마네, 피카소, 뭉크, 사르트르 같은 문인 예술가 철학자들이 뿌연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논쟁을 벌였다.
살롱이 귀족들만의 클럽이라면 카페는 귀족과 평민, 부자와 빈자가 한 자리에 모여 격의 없이 토론하고 웃고 떠드는 장소였다. 그래서 카페의 역사는 서구 민주주의 및 학문ㆍ예술 발전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커피 한 잔 시켜놓고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눈치 주지 않는 카페 한 구석의 빈자리가 없었다면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 도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해리포터>
■하기야 서구에서도 이미 1980년대부터 '카페의 죽음'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스타벅스류의 미국식 문화가 퍼지면서 매상과 경쟁력 떨어지는 카페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아들 보러 서울에 올라온 할아버지가 다방인 줄 알고 스타벅스 매장에 들어갔는데 커피를 시키고는 알바 여학생(레지가 아니다!)에게 "아가씨도 한 잔 혀!" 했다가 성희롱범으로 고소 당했다는 얘기가 생각난다. 도라지 위스키 파는 다방은 벌써 사라졌다. 파리의 하늘 밑에서도 담배마저 피울 수 없다니 세상이 너무 야박해진다 싶다.
이광일 논설위원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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