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는 아일랜드와 함께 세계화가 가장 잘 된 나라 1,2위를 늘 다툰다. 진입장벽이 없고 완전경쟁이 제도화 돼 있다. 반대로 자국 기업 보호육성은 미약해 투자환경 변화로 외자가 빠질 경우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단점도 있다. 하지만 기업하는데 최고의 조건을 제공하는 싱가포르를 떠날 기업은 별로 없다. 제조업 유치전략의 우리나라와 사정이 다르기는 하지만 싱가포르의 외자유치 노력은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싱가포르 서쪽의 토구 안 로드. 낯 익은 CJ GLS 간판이 눈에 띈다. 싱가포르 토종 물류회사 ‘어코드’를 지난해 CJ GLS가 인수하면서 매입한 건물이다. 당시 어코드의 사장이던 임오규씨는 CJ로 옮겨 지금도 사장을 맡고 있다.
12년째 싱가포르에서 잔뼈가 굵은 임 사장은 싱가포르의 투자환경에 대해 “규제가 제로”라고 간단히 정의했다. 회사를 하나 차리려면 경제개발청(EDB)에 싱가포르 돈으로 2달러만 내면 등록증이 바로 나올 만큼 싱가포르는 기업하는데 걸림돌이 없다.
임 사장이 즐겨 드는 예는 더욱 싱가포르의 투자유치 자세를 잘 드러낸다.
2002년 세계 최대 휴대폰 제조업체인 노키아가 3개월 내 동남아 수리센터 건립이 가능한지 EDB에 문의해 왔다. 수리센터를 열려면 숙련된 기술자를 불러와야 하는데 수 십 명의 입국수속을 밟는데 3개월은 너무 촉박했다.
EDB는 즉각 국장 주재로 노동부, 이민국 등 관련 직원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연 뒤 ‘OK’ 사인을 줬다. 먼저 기술자를 들어오도록 한 후 이민 관련법을 개정키로 의견을 모은 것이다. 노키아 동남아 허브 수리센터의 파급효과를 계산한 포석이었다. 임 사장은 이 같은 공무원의 자세를 한국과의 가장 큰 차이로 꼽았다.
임 사장은 “EDB는 최고책임자부터 관련 기업을 정기적으로 찾아 다니며 애로사항을 묻고 해결해 준다”면서 “뛰어난 인프라에 기업하기 좋은 환경 제공 등 장점 때문에 세계 최고 물류기업들이 모두 싱가포르에 몰려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는 실제 이 같은 투자유치정책으로 2005년 7.9%, 2006년 6.5%, 올해 3ㆍ4분기까지 9%대의 초고속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실업률도 지난해 2.7%, 올해는 2.3%에 불과했다.
CJ GLS에서 차로 10분쯤 떨어진 셴튼웨이에 자리잡은 SK에너지. 동남아와 중국시장 진출을 위한 전초기지로 만들기 위해 지난해 이곳에 터를 잡았다. 두바이산 원유가격을 결정하는 정유산업의 메카인 데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알아서 만들어주는 싱가포르보다 좋은 조건은 찾기 어렵다는 것이 SK에너지 관계자들의 말이다. SK에너지는 이 곳 마지막 남은 노른자위 땅에 정유플랜트 건설을 타진하고 있다.
정현천 부장은 “싱가포르 공무원들은 면담을 요청할 경우 해당 기업으로 먼저 찾아온다”면서 “투자기업이 리스크 부담을 느낄 경우 일정액을 함께 투자해 안심시키기까지 한다”고 말했다.
실제 EDB는 자회사인 EDBI(EDB Investment)를 통해 투자에 부담을 느끼는 외국 기업들을 위해 일정액을 함께 투자하고 있으며 여러 국내기업도 혜택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기업에게는 어떨까. 중소기업진흥공단 싱가포르사무소 박원웅 수석대표는 “기술력만 있다면 중소기업도 오케이”라면서 “중국의 급성장에 위기감을 느낀 공무원들이 지원할 테니 첨단 중소기업이 있으면 추천하라고 오히려 역으로 제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소장은 “이 곳 공무원들은 절대 ‘노’라는 대답을 안 하고 대신 ‘고민해 보겠다’고 한 뒤 열린 마음으로 투자효과를 면밀하게 검토한다”면서 “이 곳은 동남아 비즈니스 정보의 집결지기 때문에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에서 사업하고 싶어도 이곳에 본사를 차려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낮은 법인세, 싼 임금, 유연한 노동정책, 적극적인 지원책 등 뛰어난 인프라로 정유, 금융등 분야에서 세계적 허브기능을 갖췄기 때문에 한 마디로 오고 싶지 않아도 와야만 하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것이다.
싱가포르는 2018년까지 제조업 산출 3,000억 싱가포르달러(198조원) 연 제조업부가가치생산 52조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싱가포르=이범구 기자 goguma@hk.co.kr
■ 싱가포르 경제개발청 웡씨/ "투자 꺼리면 법까지 고쳐 유인"
"싱가포르는 누구나 맞이할 자세가 돼있는 최고의 투자처다."
싱가포르 경제개발청(EDB)의 에너지분야 상급 담당자인 다이애나 웡(23ㆍ사진)씨는 싱가포르의 기업환경을 이렇게 정의했다. 그는 "안 되면 되게 하고 심지어 법까지도 우리들에게는 가변적"이라고 강조했다.
EDB 관계자들이 이렇게 자신에 찬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이유는 그들에게 싱가포르를 이끌어간다는 '특권'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EDB는 중ㆍ고교 성적 최상위 학생 중 면접 및 적성검사를 통해 장학생을 선발, 해외유隙?보낸다. 이들은 해당국 명문대학을 다니면서 그곳 문화를 자연스럽게 익히고 인맥을 형성한 뒤 귀국해 5,6년간 의무근무를 하며 해당국과의 투자유치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대부분이 20대 중반으로 열정과 패기, 도전정신으로 무장하고 있다. 웡씨도 미국 위스콘신 대학을 졸업한 뒤 현재 3년째 EDB에서 근무중이다.
EDB는 통산산업부의 산하기관이지만 외자유치를 할 때는 오히려 최고의 기관으로 탈바꿈한다. 투자를 원하는 기업의 프리젠테이션이 있을 경우 유관기관 관계자를 모두 참여시켜 조율하는 역할을 맡는다. 웡 씨는 "인센티브나 제한규정은 서류상의 문제일 뿐 유치효과가 크다고 판단되면 모두 조정의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웡 씨는 "EDB 공무원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대우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반대로 철저히 능력위주로 평가 받아 이직도 잦은 편"이라면서 "무엇보다 열린 마음으로 모든 것을 긍정적, 적극적으로 판단하는 자세가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1961년 설립된 EDB는 국내외 50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화학, 전자 바이오메디컬, 신재생에너지 등의 투자유치에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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