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사건이 한 알의 씨앗이 돼 무분별한 소송을 남발하는 관행이 고쳐졌으면 합니다.”
바지 한벌을 잃어버렸다는 이유로 로이 피어슨 전 워싱턴 D.C 행정법원 판사로부터 천문학적인 거액 소송을 당한 한인 세탁업주 정진남, 정수연씨 부부가 ‘묻지마 소송’을 예방하기 위해 동영상에 출연, 미국 내에서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정씨 부부는 26일 미국 상공회의소(www.uschamber.com)가 소송 남발을 막기 위해 운영하는 사이트(http://iamlawsuitabuse.org)에 나와 소송으로 인한 고통을 토로하고 소모적인 억지소송을 자제해달라고 호소했다. 이 내용은 동영상 전문 사이트 유튜브(http://youtube.com)에 ‘정씨 부부 소송을 이야기하다(Jin and Soo Chung discuss lawsuit)’라는 제목으로도 공개돼 있다.
2분52초 분량의 이 동영상에서 정씨는 “자식들에게 좀 더 나은 교육을 시키기 위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고 싶어서 1992년 미국으로 왔다”며 “세탁소를 차려 2, 3호점을 내고 열심히 일했지만 ‘바지소송’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고 말했다.
정씨는 “한국에서는 경찰서 한번 갈 일 없었는데, 어느 날 (피어슨 판사의) 소장을 받았다. 처음에는 큰 소송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피어슨 판사에게 연락해도 만나주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며 “하지만 미국 법정에 몇 번씩 출두하면서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고, 결국 이뤄놓은 것을 잃고 말았다”고 전했다.
부인 수연씨는 “주변 사람들이 정말 이렇게 해도 되는 거냐며 분개하기도 했지만, 그 사람이 너무 황당하게 끝까지 밀고 나가니까…”라며 말을 잇지 못했고 “지금도 그 사람한테 당한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프다”며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정씨는 “이번 소송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소모적인 싸움이었다”며 “이제라도 처음 생각한대로 (아메리칸 드림을) 한번 이뤄보고 싶다”며 재기의 의지를 내비쳤다.
피어슨 판사는 2005년 정씨의 세탁소에 바지를 맡겼다가 분실하자 ‘만족보장’이라는 홍보문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며 5,400만 달러(500억원)의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2년간의 법정소송에서 패했고, 무리한 소송으로 미국 법정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판사재임용에서도 탈락했다.
한창만 기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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