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대통령’을 표방한 이명박 정부에 거는 부동산업계의 기대는 남다르다. 참여정부 5년간 숱하게 쏟아진 각종 규제 탓에 중견 건설업체들이 잇따라 무너지는 등 부동산시장이 크게 위축돼 있기 때문이다.
새 정부는 집값 불안감이 여전한 가운데 거래 침체와 미분양 급증으로 가라앉은 부동산시장을 되살려야 하는 숙제를 떠안았다.
‘집값 안정’과 ‘거래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느냐 여부는 단순한 부동산시장의 문제를 넘어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는 부동산시장 안정을 국정 운영의 핵심 과제로 삼고 집권 초기부터 강공 드라이브를 걸어온 참여정부가 집권 말기까지 아파트값 폭등에 발목이 잡혔던 전례에서도 예측이 가능하다.
◆ 집값을 잡아라
부동산시장 안정은 역대 어느 정권에서든 정부가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국정 운영의 핵심 과제였다.
그러나 이 당선자는 1970년대 성장 위주의 개발을 주도했던 건설회사 최고경영자(CEO) 출신이라는 점과 청계천 복원, 뉴타운 개발을 성공적으로 이끈 서울시장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
이 때문에 부동산시장의 기대감이 커지면서 벌써부터 재건축 추진단지의 호가가 급등하고 재개발 인근 땅값이 들썩거리는 등 ‘MB(이명박)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 당선자의 종합부동산세ㆍ양도소득세 완화, 재건축 규제 완화, 한반도 대운하 건설 등의 부동산 정책 또한 향후 부동산시장을 불안케 하는 뇌관으로 작용할 위험성이 크다.
전문가들도 이 후보의 부동산 공약 탓에 새 정부 초기부터 부동산가격이 폭등할 수 있다는 우려를 잇따라 제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양도세ㆍ종부세 감면, 재개발ㆍ재건축 용적률 완화, 도심재개발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동산시장이 벌써부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며 “강력한 개발이익 환수장치를 마련해 투기 및 시장 불안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불필요한 규제를 과감히 풀되, 참여정부가 마련해 놓은 부동산 정책을 일관성 있게 가져가는 것도 중요하다.
이 당선자가 내건 부동산 세제 완화 및 노후 도심 재건축ㆍ재개발 활성화 공약은 시장 회복이라는 긍정적 효과 대신,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의 후퇴라는 잘못된 시그널을 줘 시장 불안만 부추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대운하 건설도 부동산시장 안정에는 역효과를 낳을 우려가 있다. 세종시, 기업ㆍ혁신도시로 대표되는 참여정부의 지방균형발전 정책이 지방 중소도시까지 부동산 투기 바람을 일으켰던 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연구위원은 “차기 정부는 시장 친화적인 부동산 정책을 세우되, 시장에 잘못된 사인을 주지 않으려면 선별적인 규제 완화를 할 필요가 있다”며 “이 당선자가 밝혔듯이 먼저 개발이익 환수제도를 철저히 해두는 것이 재건축발(發) 시장 불안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 시장을 살려라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집값 안정에 지나치게 주력하다 보니 투기와 무관한 정상적인 주택거래 기능까지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따라서 새 정부는 집값 안정기조를 유지하면서 활기를 잃은 시장을 살려내는 이중의 책무를 떠안게 됐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부동산시장을 지나치게 옥죄는 세제와 이중 삼중으로 시장을 압박하는 규제를 손질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현아 연구위원은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들을 보면 불필요하게 시장을 중복 규제하는 부분들이 많다”며 “과다 규제는 시장을 왜곡시키고 거래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는 만큼 규제 통ㆍ폐합 등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재건축 단지에 적용되는 소형평형과 임대주택 의무 건립 등은 주민들에게 이중 부담을 줘 재산권 행사에도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꼭 필요한 재건축은 진행될 수 있도록 둘 중 하나는 없애고, 대신 개발이익을 제대로 환수해 공익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이 당선자가 공약으로 내세운 1가구1주택 장기 보유자에 대한 종부세 및 양도세 완화는 얼어붙은 거래시장에 숨통을 터 줄 것으로 기대되는 대목이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1가구2주택자라도 투기 수요가 아닌 장기 보유인 경우엔 오래 보유할수록 감면 폭을 늘려 주는 등 탄력적인 세제 운영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또 “과거 매매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제 혜택이 있었을 당시 이들이 대거 매입하는 물량 덕분에 미분양이 크게 줄었다”면서 “이들에게 양도세와 종부세 감면 등의 인센티브를 다시 줘 미분양을 흡수하도록 지원하면 거래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태훤 기자 besame@hk.co.kr
■ 이렇게 풀어보자/ 전문가 제언
◆ 수요 있는 곳에 공급, 원칙 지켜야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지난해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특강에서 부동산시장에 대한 이원화 정책을 밝혔다.
무거운 세금으로 고통 받고 있는 1가구 1주택자에 대한 규제는 풀어주되, 무주택 서민들에게는 값싼 주택 공급을 통해 내집 마련을 돕겠다는 것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임이 분명하다.
향후 부동산 정책은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 확대가 있어야 한다'는 원칙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참여정부의 공급확대 정책은 공영개발을 통한 신도시 개발이었다.
기존 수요층이 있는 곳에 공급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일단 공급을 해놓고 새로운 수요를 기다리는 정책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수요층이 서울 등 일부 지역에 몰려있다는 점에서 이 정책이 효과를 볼 수 있을 지는 미지수였다.
따라서 새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도심 재개발이나 재건축을 통한 주택공급 정책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이를 위해 새 정부는 재건축ㆍ재개발에 관련된 중복 규제를 합리적으로 풀어야 한다. 지금은 개발이익 환수제와 소형 아파트ㆍ임대주택 의무 건축 등 이중 삼중의 규제가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대규모 택지개발지구에 임대아파트와 일반아파트를 섞어서 배치하는 '소셜믹스(Social Mix)' 정책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일반아파트 구매층과 임대아파트 수요층은 엄연히 다르다는 현실적 인식을 받아들여야 한다.
현재 시장에서 가장 관심사로 떠오른 전매제한 규제 완화는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투기 수요를 억제하는 데는 어느 정도 효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다만, 미분양이 넘쳐 나는 현실을 고려해 수요가 몰리는 서울이나 수도권 일부 지역에 한정하는 선택적 규제가 필요하다.
징벌적 규제가 시행되고 있는 토지시장의 경우도 보유기간과 투자규모, 목적에 따라 양도세를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이 당선자의 주요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는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게 아니라 광범위한 여론 수렴을 한 후 좀 더 검토해야 한다.
강수량과 지대의 높낮이가 일정하지 않은 점을 고려해 신중하게 추진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교수
◆ 경쟁력 없는 주택산업에 메스를
종합7면/ 변창흠 세종대 산업경영대학원 부동산경영학과 교수
역대 부동산 정책은 가격 상승기에 투기억제 수단을, 가격 안정기엔 경기부양책을 번갈아 쓰면서 부동산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도를 떨어뜨렸다. 새 정부는 이런 점을 고려해 정책의 기본 틀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미분양 물량 증가는 기본적으로 주택공급 과잉과 높은 주택가격이 결합된 구조적인 요인 탓이다.
단기적으로 급격한 미분양 확대에 따른 건설업계의 도산을 최소화해야 하지만, 장기적으론 고분양가에 의존해 경쟁력 없이 난립해 온 주택산업 자체에 대한 구조조정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기존 도시 재개발을 통한 주택공급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재개발ㆍ재건축 규제의 상당 부분은 도시관리 차원에서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주택공급 확대를 위해 규제를 해소하기는 쉽지 않다.
재건축 규제 합리화를 위해서는 과거 서울시가 운영했던 ‘재건축에 대한 시기조정위원회’와 같은 기구를 설치해 재건축 시기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
공공 임대주택은 전체 주택 중 재고 비중이 3%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인 만큼, 저소득층의 주거 안정을 위해 그 비중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2012년까지 임대주택 건설 116만 가구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88조원의 재정지원이 요구되므로, 무조건 물량목표에 맞추기보다는 지역별 수요와 재정능력, 입주자들의 부담능력을 고려해 추진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대운하 사업의 경우 이 당선자가 내세우는 물류비용 절감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KTX 전면 개통이 이뤄지면 서울~부산을 2시간대에 갈 수 있는 데, 시속 20㎞ 이내 속도로 운항하는 운하를 통해 물류비용을 절감하는 것은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운하 건설을 둘러싸고 환경파괴와 수질보전 등을 둘러싼 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될 것이므로 물류, 관광, 지역개발 등의 효과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추진 여부를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변창흠 세종대 산업경영대학원 부동산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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