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영화 속의 찰리 윌슨이 아닙니다."
미국의 현직 하원의원이 동명이인인 선배 의원을 다룬 영화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주인공은 오하이오주의 민주당 출신 초선의원 찰리 윌슨. 21일 개봉된 <찰리 윌슨의 전쟁> 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실존 인물인 찰리 윌슨 전 의원으로 혼동하는 사람이 많아 죽을 맛이다. 찰리>
영화는 연기파 스타 톰 행크스, 출산과 육아 후 복귀한 줄리아 로버츠라는 최고의 할리우드 배우가 출연해 작품성과 흥행성을 다 갖췄다는 평가를 받으며 개봉 첫 주 960만 달러의 입장료 수입을 올리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13일 발표된 제65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남우조연상, 각본상 등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가 잘되면 잘될수록 찰리 윌슨은 애가 타고 있다. 73년부터 97년까지 텍사스주 하원의원을 지낸 영화 속 찰리 윌슨이 현직에 있을 때 주색잡기를 즐긴 데다 80년 옛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당시 현지의 무자헤딘을 적극적으로 도운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 무자헤딘 가운데는 미국이 현재 대테러전쟁을 하는 탈레반 반군도 포함돼 있다. 역시 민주당 소속이었던 텍사스의 찰리 윌슨은 냉전적 사고에 젖은 강경 보수주의자로 중앙정보국(CIA)의 공작원을 자처하며 무자헤딘에 자금을 댔다. 그의 일생을 다룬 영화는 2004년 애틀랜틱 맨슬리 프레스가 출간한 조지 그릴의 동명 소설을 토대로 만들었다.
하지만 오하이오의 찰리 윌슨은 영화 개봉 후 사람들이 자신을 텍사스의 찰리 윌슨으로 착각하자 당황하고 있다. 애틀랜타의 공항에서 조지 그릴의 책을 산 뒤 신용카드를 내밀었다가 점원과 손님들이 몰려 본인의 얘기냐는 질문 공세를 해댔다.
TV에 <찰리 윌슨의 전쟁> 예고편이 방영되자 상대 진영이 네거티브 캠페인을 시작했느냐는 친구와 친척의 전화가 쇄도해 해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찰리>
지난 주에는 스페인 마드리드의 기자가 전화해 찰리 윌슨의 사진을 부탁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기자는 영화 기사를 쓰면서 사진을 함께 게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오하이오의 찰리 윌슨은 기자회견을 열어 "이제껏 영화 및 책과 관련 있느냐는 질문을 1,000번 이상 받았다"며 "나는 텍사스의 찰리 윌슨이 아니다"고 공개적으로 확인했다.
그는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62%의 압도적 지지로 오하이오 제6 선거구에서 당선돼 처음 하원에 진출했다. 그 전에는 주의원으로 활동했으며 8명의 손자손녀를 둔 건실한 가장이자 반전주의자다.
그는 특히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정책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어서 텍사스의 찰리 윌슨 때문에 자신의 이미지가 훼손될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영화 덕분에 지명도가 올라가고 인터뷰 요청이 많아져 경제, 건강보험, 아동교육에 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힐 수 있는 기회가 느는 뜻밖의 소득도 있었다고 웃었다.
한성숙 기자 hans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