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굵은 족적을 남긴 유명 인사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정계의 거물도,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도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지는 못했다. 2007년에 유명을 달리한 인물들을 정리해본다.
5, 6대 대법원장을 지낸 민복기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변호사가 7월13일 9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러나 1968년부터 10년간 그가 최장수 대법원장을 지내는 동안 인혁당사건, 사법파동 등을 겪으며 사법부의 권력예속화가 심화했다는 평이 내려지기도 했다.
5공 시절 외무부 장관을 지낸 이원경씨는 8월3일 85세로 타계했다. 1948년 정부 수립 후 처음 실시된 외교관 공채시험에 합격한 그는 82년 서울올림픽 유치에 기여한 공로로 체육부 장관을 맡기도 했다.
한국전쟁에서 전공을 세워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김성은 전 국방장관은 5월15일 83세로 별세했다.
10ㆍ26 직후 명동 YWCA 위장결혼식 집회에서 국민선언문을 낭독한 박종태 전 의원은 7월16일 87세로 숨졌고 대한체조협회장, 주한 페루명예대사 등 다방면에서 활동한 국쾌남 전 의원도 11월15일 85세에 세상을 등졌다.
재계에서는 개성상인 출신으로 1937년 건복상회를 설립, 사업가로 첫발을 뗀 뒤 40여년간 화학분야에 매진한 이회림 동양제철화학 명예회장이 7월18일 90세로 타계했다.
국내 최초의 맥주회사 조선맥주 대표를 거쳐 국내 1위 진로그룹까지 인수한 박경복 하이트ㆍ진로 명예회장은 일주일 뒤인 7월25일 85세에 별세했다.
게맛살로 유명한 김성수 오양수산 회장은 6월2일 85세로 세상을 떠났으나 경영권을 둘러싼 집안싸움으로 발인이 미뤄지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부인 변중석 여사는 8월17일 86세를 일기로 인생을 마감했다. 15세에 정 명예회장과 결혼, 8남1녀를 키우며 조용한 내조를 펼쳤다.
기업은행 사상 처음으로 연임에 성공한 강권석 기업은행장은 편도종양 치료를 받던 도중 11월30일 57세로 숨을 거둬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문화계에서는 <인연> <수필> 등을 남긴 수필가 피천득 서울대 명예교수가 5월25일 97세로 별세했다. 17세에 만난 일본인 아사코와의 첫사랑을 간결하고 섬세하게 풀어낸 <인연> 은 지금도 수필문학의 교과서로 사랑받고 있다. 인연> 수필> 인연>
중국 텐안먼광장 혁명기념관에서 한국인 최초로 개인전을 연 서예계의 거목 김응현선생은 2월1일 80세로 타계했다.
‘조선 마지막 무동’으로 불리던 원로무용가 김천흥선생은 8월18일 98세를 일기로, 20년간 국립무용단을 이끌며 대형무용극을 정립한 송범선생은 6월15일 82세에 각각 유명을 달리했다.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형인 소설가 김국태씨가 5월29일 69세로, <수난이대> 의 작가 하근찬씨가 11월25일 76세로 세상을 떴고 출판문화를 이끈 홍석우 탐구당 대표는 11월18일 89세로 별세했다. 수난이대>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로 유명한 <4월의 노래>의 작곡가 김순애씨는 5월6일 87세를 일기로, <아 대한민국> <잊혀진 계절> 의 작사가 박건호씨는 12월9일 58세로 숨졌다. 잊혀진> 아>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명예보유자 이강덕씨는 6월6일 79세를 일기로, 진도씻김굿 보유자 박병천씨는 11월20일 75세의 나이에 각각 생을 마감했으며 북청사자놀음 보유자 여재성씨는 11월21일 88세에 숨을 거뒀다.
큰손 장영자씨의 딸과 결혼하고 이혼해 화제를 모은 탤런트 김주승씨는 8월13일 46세라는 젊은 나이에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한국 스포츠의 증인 조상호 전 대한체육회장은 8월25일 새벽 산책 도중 머리를 다쳐 81세로 유명을 달리했고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지낸 최은택씨는 2월5일 6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백범 김구 선생 암살의 배후를 밝히는데 앞장선 권중희씨는 11월16일 71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으며 비전향 장기수 출신 이인모씨는 6월16일 89세로 북한에서 사망했다.
종교계에서는 1970, 80년대 민주화와 인권운동에 헌신한 김동완 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총무가 9월12일 65세로 타계했고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을 지낸 장기천목사는 5월7일 77세에 눈을 감았다.
해외 인물 중 가장 눈에 띄는 인사는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으로 4월23일 69세로 사망했다. 구 소련 붕괴 이후 첫 러시아 대통령을 역임한 그는 시장경제를 도입했으나 각종 부패, 정경유착 때문에 ‘부패 정치인’이란 낙인이 찍히기도 했다.
지한파(知韓派)로 미 의회가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헨리 하이드 전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은 11월29일 83세로 사망했다.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잘못을 공식 사죄해야 한다고 주장한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전 일본 총리는 6월28일 88세로 숨을 거뒀다.
‘천상의 목소리’로 유명한 세계적인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9월6일 71세로 타계했으며 <산딸기> <화니와 알렉산더> 등을 남긴 스페인 영화 감독 잉마르 베리만은 7월30일 89세로 사망했다. 화니와> 산딸기>
이탈리아 모더니즘 영화의 거장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도 같은 날 94세로 생을 마감했다.
냉전시대 미국 자유주의 철학을 정립한 아서 슐레진저 2세는 2월28일 77세로 숨졌고 프랑스의 포스트모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3월6일 77세로 생을 마감했다.
노숙자 자립 공동체 엠마우스 운동을 창시하고 평생을 노숙자 및 빈민구호 활동에 헌신한 아베 피에르 신부는 1월22일 94세로 타계했다.
반면 태국, 미얀마, 라오스의 접경지역 골든트라이앵글에서 마약을 재배하며 ‘왕관 없는 왕’ 노릇을 한 마약왕 쿤사는 10월26일 74세로 사망했다.
한창만 기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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