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와 연말 시즌, 연인들과 젊은 관객들을 위한 뮤지컬로 공연장이 북적일 때 다른 상상을 해본다. 추수 끝난 지 한참은 지났고, 이삭줍기도 끝나고, 김장과 겨울 땔감을 마련하고 난 옛 시절이라면 대갓집 안마당에 화톳불 밝히고 소리 광대들의 인물치레와 소리놀음에 흥도 나겠다.
지금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는 창극이 오르고 있다. 창극의 기존 레퍼토리로만 보자면 갸웃할 새로운 막이 오른 것. 고인이 된 차범석 선생의 사실주의 희곡의 대표작을 창극으로 몸 바꾼 ‘젊은 창극’ <산불> 이 그것이다. ‘젊은 창극’이라 이름한 이유는 감각적으로 새롭다는 의미는 아니다. 산불>
젊은 소리꾼을 중심으로 무대를 꾸렸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판소리 다섯 마당 식의 우리 조상들이 곰삭힌 범주가 아니라 비교적 근거리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레퍼토리의 나이로 해석해야 할 것 같다.
지난 공연 <청> 이 스펙터클의 규모와 예술적 승화 문제를 좇았다면, 이번 <산불> 은 대중적 친근성과 대사 중심의 사실적 서사를 어떻게 다룰 수 있는가를 탐색한다. (박성환 연출, 각색) 산불> 청>
우선 테마 면에서 전쟁과 주림의 현실 속에서도 해학과 신명을 놓지 않았던 ‘민초들의 삶의 찬가’쪽을 강조한다. 그리고 해학 쪽 색채를 보다 두텁게 했다. 망령 난 김노인의 뱀장수 타령에 담긴 너스레, 공습에 정신을 놓아버린 귀덕의 장타령, 마을 아낙들의 질펀한 음담패설을 은유적으로 전해주는 진도아리랑 등이 끼어드는 식이다.
점례와 빨치산 탈영병 규복의 밀회와 사랑을 선남선녀 무용수의 2인무로 인물의 내면을 가시화한 시도가 참신하고, 마지막 산불장면에서 과감히 대숲을 객석 쪽으로 쓰러트린 무대미술 등이 의욕에 넘친다.
그러나 빨치산 병사들과 아낙들이 함께 부르는 혁명가극 창가풍의 프롤로그는 인물이 놓인 환경과 상황을 전달하는 도입부로 그 몫이 주는 중압감이 너무 크다. 그리고 춘향전 절개를 찬하고, 심청전 효를 전하며, 흥부전 형제간 우애를 강조하듯 ‘참으시오, 잊으시오’ 주제를 그예 요약하면서 의미새김을 권하는 피날레 부분은 의욕이 지나쳤다.
우리 소리 유산의 절충적 쓰임에 치우치는 것은 창극 장르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인가? 주제를 관념적으로 강조하는 것을 덜어내고 우리 어법의 숨쉬기와 말하기의 리얼리티 면에서 유리한 소리꾼들의 장점을 살려 지극한 정서와 상황 전달의 행간을 섬세하게 실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드는 무대다.
화술을 굳이 고심하지 않아도 창극 배우들의 정확한 구술 능력에 힘입어 <산불> 자체가 연극 못지않게 잘 전달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국립창극단, 30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산불>
극작ㆍ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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