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과 연말 분위기로 시내거리가 한껏 들뜨기 시작한 20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자리잡은 서울시립어린이병원은 외딴섬처럼 조용했다. 아이들이 모여있는 곳인데도 흔한 성탄 트리도 없었고, 캐롤도 들리지 않았다. 서울시립어린이병원은 장애 어린이들을 치료하면서 돌봐주는 국내 유일의 전문병원. 10개 병동에 240여명의 어린이 환자가 생활하고 있다.
경증환자만 있다는 51병동에 들어서 어린 환자들을 보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뇌성마비, 정신박약, 뇌수종 등 3,4가지 복합질환을 가져 이상한 얼굴과 기형의 손, 발을 한 아이들을 차마 오래 볼 수 없어 시선을 이리저리 옮겨야 했다. 한 병원관계자는 “처음에 이곳을 오는 대부분 사람들이 아이들의 상태를 보고 놀란다”며 “임신 전후에 과도한 흡연, 음주, 약물을 남용한 부모들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라고 귀뜀했다.
“엄마, 엄마, 엄마….”
그런 아이들이 여기 저기서 바닥에 배와 머리를 밀며 모여들었다. 이곳에선 아이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엄마’로 불린다. 그나마 ‘엄마’를 부르거나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아이들은 양호한 축에 든다. 51병동을 제외한 다른 병동의 어린 환자들은 대부분 평생을 누워서 지내야 하는 침상 환자들이다.
앞을 볼 수 없는데다 구순구계열(언청이)를 가진 지경(가명ㆍ여ㆍ8)이가 제일 먼저 다가와 매달렸다. 알아 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지르며 기어 오른 지경이는 한참 동안 내려올 줄을 몰랐다.
“지경이가 그러면 아저씨가 다른 친구들이랑은 못 놀잖아.” 간호사의 가벼운 꾸지람에 떨어져 앉는가 쉽던 지경이는 금세 다시 들러붙었다. 간호사는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들에게 버림받고 자란 아이들이라 사람의 손길을 그리워한다”고 설명했다.
1948년 보건병원으로 시작한 시립어린이병원은 최근까지 ‘기아(棄兒)집합소’로 통했다. 원무과 한 직원은 “5년 전만 하더라도 이른 아침 병원 입구에 놓인 바구니, 라면상자에는 틀림없이 아기가 들어 있었다”며 “아이들 절반은 부모들이 친권을 포기하고 버린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나머지는 복지시설이나 개인이 위탁한 어린이들이다. 어린이병원이지만 35세 환자도 있다. 이곳 어린이들이 갈 수 있거나 받아주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8년째 이들의 ‘엄마’가 돼주고 있는 자원봉사자 유필수(53ㆍ여)씨는 “봉사활동을 한다고는 하지만 순수한 아이들에게서 오히려 많은 것을 배워 간다”며 “힘 닿는 날까지 아이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말시험을 마치고 이날 봉사활동에 나선 이진주(14ㆍ덕성여고1)양은 “시험을 망쳐 집에서 짜증만 냈다가 이곳에 왔는데 지금까지 얼마나 철없이 행동했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한 간호사는 “이곳에 봉사활동을 나온 청소년들은 어린 환자들을 돌보면서 자신을 낳아 길러준 부모와 건강한 자신의 몸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봉사활동 왔다가 심각한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모습에 놀라 도망치는 학생들도 있다고 했다.
한 30대 자원봉사자는 “성탄절도, 선물도 모르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며 “사랑에 목말라 있는 아이들을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놀아주기, 목욕시키기, 음식먹이기 등으로 시간을 보낸 뒤 가운을 벗자 매달리던 아이들이 신기하게 뒤로 물러났다. 아무리 즐겁게 놀아주는 ‘엄마’도 자신들과 언제까지 함께 하지 않음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원봉사 문의ㆍ신청은 병원 홈페이지(childhosp.seoul.go.kr)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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