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문학에서 자생적인 근대문학의 모습을 찾을 수 있고 연암이 그것을 정당화 시켜준다는 기존의 문학사를 부정하는 일은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괴롭더라도 이제는 그것을 돌파해야할 시점입니다.”
강명관 (48)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는 <공안파와 조선후기 한문학> 에서 철저하게 20세기적 기준인 ‘민족’과 ‘근대’로 수렴하는 한국문학사의 구성논리를 해체한다. 그가 씨름한 것은 다름 아닌 조선후기 문학의 큰 봉우리로 꼽히는 박지원, 이덕무, 이옥, 이용휴 등의 비평론과 창작론들이다. 자생적 근대문학의 단초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돼온 이들의 문학이론들이 실은 양명학적 사유, 구체적으로 명대 중국 공안파 사유의 자장 안에 있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편다. 공안파와>
강 교수가 책의 서문에서 “일종의 모험”이라고 실토했을 정도로 그것은 도발적인 작업이었다. 책은 진리에 대한 상대주의적 태도, 개성의 강조 등 근대성의 코드로 해독돼온 이들 조선후기 문학가들의 사유가 실상 ‘우리 바깥’의 것을 토대로 구축돼왔음을 입증한다. 즉 우리가 떠받드는 조선후기 지식인들의 사유는 ‘귀고천금(貴古賤今)’을 내세우는 의고파에 대한 반작용으로 17세기초 등장한 명대의 문예이론가들인 원종도, 원굉도, 원중도 등 공안파의 사유에 크게 빚지고 있다는 것이다.
연암이론에 대한 기존 연구에서 연암의 문학사상과 공안파의 사상과의 유사성에 주목한 이론은 있었지만 그는 실증적 자료를 제시하며 “연암비평이 공안파의 논리를 절취하고 있음은 비밀이 아니다” 라고까지 주장한다. 이 책과 함께 펴낸 <농암잡지평석> ,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 , <안쪽과 바깥쪽> 역시 이 같은 궁리의 결과물들이다. 안쪽과> 국문학과> 농암잡지평석>
그가 이같은 문제의식을 품게 된 것은 1992년께다. 박사학위논문을 쓰던 중 홍신유와 이언진의 문집에서 공안파의 흔적을 발견했고, 이후 우리가 높이 평가하는 조선후기 문인들의 창작과 비평이 대부분 공안파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이후 관련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해 책으로 나오기까지 무려 16년이 걸린 셈이다.
강 교수의 책이 발표된 후 학계에서는 “당혹스럽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지만, 그의 작업들은 결과적으로 국문학사에까지 완고하게 영향을 끼쳐왔던 내재적 근대화론이 빚어낸 모순을 돌파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강 교수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서구 부르주아적 근대를 더 이상 우리 근대의 모델로 삼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춘향전, 흥부전, 심청전 등 근대성의 단초를 드러낸 것으로 평가돼왔던 조선후기의 소설들이 사실은 중세적 논리를 보급하는 매체로 쓰였음을 증명하고 싶다고 했다. 그의 ‘도발’은 좀처럼 멈출 것 같지 않다.
■ 심사평/ 실학담론 비판… 박지원·박제가 등 역사적 위치 재발견
이 저서는 성리학 대 실학의 관계로 파악한 조선 시대 유학 이해를 위한 담론이 조선시대 사상사의 진정한 흐름을 놓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을 지적한다. 실체적 담론으로서 초기의 관각문학, 중기의 의고문주의, 후기의 공안파의 수용 등의 변천관계를 중시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저자는 그들 문학 양상의 발전 흐름을 통해 박지원, 박제가 등의 조선후기의 대문장가, 사상가들의 역사적 위치를 재발견하면서, 실학 담론이 논자들의 현재적 관점의 소산으로 진정한 사상적 맥락 짚기에 오히려 큰 장애가 되어온 점을 비판한다. 이 저서는 조선 시대 사상사 연구 분야에서 새로운 문제 제기로 높은 의의와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며, 입론 전개와 실증성도 돋보여 한국출판문화상 수상작으로 손색이 없는 것으로 인정되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사진=부산 이성덕기자 sd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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