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집권기간의 공공부문 결산표다. 외형적 규모의 증감만으로 성패를 재단할 수는 없지만, 지난 5년간 공공부문이 크고 뚱뚱해진 것만은 틀림없다. ‘고도비만’에 빠졌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환란 이후 ‘구조조정’은 시대적 화두였다. 당시 김대중 정부가 우선적 구조조정 대상으로 삼은 것은 기업, 금융, 공공, 노동 등 4대 분야. 혹독한 개혁의 칼바람속에 수많은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퇴출됐고, 동시에 인력감원이 이어졌다.
오늘날 국내 대기업과 금융기관들이 이 정도나마 최소한의 경쟁력을 갖추게 된 것은 살인적 구조조정의 결과였다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무풍지대’가 있었다. 바로 공공분야였다. 정부와 공기업의 구조개혁은 ‘용머리를 그리려다 뱀꼬리조차 그리지 못한’ 식으로 끝났다.
오히려 현 정부는 ‘국민서비스 증진’이란 명분아래 공공부문에 대한 확대재생산을 거듭했다. 민간은 제 살을 깎는데도, 공공분야는 오히려 살을 불린 것이다.
공무원시험 경쟁률이 사상 최고에 달하고 공무원이 1등 배우자감으로 여겨지는 세태를 뒤집어보면, ‘공공분야=영원한 안전지대’란 인식이 뿌리내려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공기업도 다를 게 없다. 공무원(정년보장)과 민간기업(높은 임금)에서 좋은 것만 모아놓았으니, ‘신이 내린 직장’이란 말이 나올 수 밖에.
공기업 부채는 2001~2006년 51%나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인력은 줄어들기는커녕 같은 기간 12%나 증가했다.
공무원 연금개혁의 실패는 ‘철밥통’ 수준을 넘어 국민에 대한 이중성마저 보여준다. 정부는 연금재정고갈 운운하며 국민연금에 대해선 급여를 삭감하는 쪽으로 대수술을 가했으면서도 이미 재정이 구멍나 매년 수조원 혈세로 메우고 있는 공무원ㆍ군인연금은 손대지 않았다.
더구나 공무원ㆍ군인연금은 국민연금보다 훨씬 ‘덜 내고 더 받는’ 특혜적 구조로 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나는 못하니 너희만 개혁하라’는 이기적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민간기업 CEO출신답게 이명박 당선자는 공공부문에 최우선적으로 손을 대야 한다. 민간기업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정부와 공기업, 공무원에 대해 최소한의 민간식 경쟁과 효율을 가르쳐야 한다.
이 당선자측은 ‘공무원수 동결’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감축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김관보 가톨릭대 행정학과 교수는 “차기 정부는 임기동안 공무원 정원을 매년 5%씩 모두 25%로 줄여야 한다“면서 그 방안으로 ▦공약대로 ‘대부대국’(大部大局) 체제의 정부조직 단순화를 통해 중복인원감축을 유도하고 ▦불요불급한 각종 기획단과 위원회를 해체하며 ▦우정사업본부 등 기존 정부조직을 민영화할 것을 제안했다.
중단된 공기업 민영화 역시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민영화를 위한 민영화’는 배제되어야겠지만, 늘 ‘민영화는 시기상조’라고 말하는 타성에서도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리보다 훨씬 심한 ‘관료국가’인 일본조차도 우정업무를 민영화했을 정도다.
한국경제연구원 조성봉 연구조정실장은 “현재 우리나라 공기업들에게는 소비자, 금융, 주주 등 시장감시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경영진과 종업원의 비효율을 제어할 방법이 없는 상태”라며 “민영화를 통한 경쟁력 제고 외에는 치유책이 없다”고 진단한다.
시장실패 분야인 만큼 대상은 신중을 기해야 겠지만, 극단적으론 조폐공사처럼 공공성이 강조되는 공기업을 빼곤 가스, 전력, 지역난방, 철도, 우정사업 등을 모두 민영화하자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공무원연금개혁은 더 늦출 수 없는 과제다. 그냥 두는 것은 세금을 내는 국민에 대한 기만이다. 문형표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이미 시기를 놓친 측면이 있지만 차기 정부는 굳은 의지로 지금이라도 즉시 급여수준 조정에 대한 여론수렴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원식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공무원 연금은 보수체제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급여수준 조정은 단기간에 성사되기 힘들 것”이라며 “단계적 개혁해나가되 우선 현재 공무원 임금상승에 연동되는 연금보수조정을 물가연동으로 바꿔 상승률을 낮추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공공개혁은 타이밍도 중요하다. 집권중반이후로 넘어갈수록, 관료조직의 논리에 동화되고 또 공무원 전체의 조직적 저항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 출범 1년을 넘기지 말고 강력한 의지로 개혁해야 한다”는게 경험있는 전문가들의 공통된 주문이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 이렇게 풀어보자… 전문가제언
● 공무원 정원 1년에 5%씩 감축을
참여정부 임기 동안 늘어난 공무원은 6만5,000명을 넘는다.
역대 정부 가운데 공무원을 가장 많이 늘린 정부가 될 것이다. 차기정부는 이처럼 비대해진 정부조직을 혁명적으로 수술할 개혁안을 마련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우선 현 ‘18부4처’를 ‘1원10부2처’로 축소 개편해야 한다. 차기정부 조직개편은 국가전략기능, 인적자원 통합기능, 경제정책 조정기능, 과학기술 및 산업정책 통합기능, 자원 및 국토ㆍ환경 기능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신설될 국가전략기획원은 부총리 직급으로 재정경제부의 경제정책 및 경제조정 기능과 기획예산처의 기획 및 예산 편성ㆍ집행기능, 규제개혁위원회의 일부기능, 법체저의 기능 등을 통합해 각 부처의 이견을 조정한다.
또 10부는 미래인적자원부, 외교통상부, 법무부, 국방부, 농림수산자원부, 환경생태부, 과학산업부, 평생복지가족부, 국토해양부, 재무부로 구성된다. 1
행정자치부는 행정조정처로, 통일부는 국무총리 산하 남북교류협력처로, 정보통신부는 정보통신 정책 및 규제기능을 방송통신위원회로 이관한다.
국가보훈처는 국가보훈청으로, 국정홍보처는 폐지하고 해외홍보기능은 외교통상부로, 주 업무인 정책홍보기능은 각 부처 홍보기능으로 이관한다. 법체처는 기능을 강화하고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해 신설 국가전략원으로 이관한다.
또 차기정부는 공무원 총 정원의 5%씩을 매년 감축해 5년 동안 총정원 25%를 감축하는 ‘국가공무원 총정원 감축관리제’를 한시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조직축소, 비효율적인 위원회ㆍ기획단 등의 통폐합 및 사무조직 페지, 우정사업 민영화 등을 통해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 합리적인 민영화 추진체계 필요
참여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국민의정부가 추진하던 공기업 민영화와 인원감축 작업을 중단하고, 대신 성과지향적 경영ㆍ대국민 서비스 제고 등 ‘공기업 경영혁신’에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이런 현 정부의 이런 미온적인 대처는 공기업 경영진에게 민영화 방침의 완화라는 잘못된 신호를 주게 됐다. 그 결과 단기적으로 공기업부문의 부채 및 인원 증가와 장기적으로는 공공부문의 팽창으로 이어지게 됐다.
공기업의 본질적 문제는 ‘경영을 잘못하면 파산한다’는 시장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비롯되며, 일부 정치인들의 기회주의적 개입이 가능하게 되는 허술한 소유구조에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공기업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민영화이다.
이를 위해 차기정부는 공공부문의 역할에 대한 명확한 비전설정에 기초해 구체적이고 본질적인 민영화 로드맵을 수립해야 하며 합리적인 민영화추진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또 최고 정책결정자의 지속적인 관심표명과 전략적인 계획수립이 필수적이다.
분야별로 살펴보면 전력산업의 경우 이미 ‘국민의 정부’ 당시 수립된 로드맵을 실행에 옮기면 된다. 특히 현정부 초기 노ㆍ사ㆍ정위원회의 개입으로 중단된 배전 및 판매부분 분할도 다시 추진돼야 한다.
지역난방사업의 경우는 민영화로 인한 가격인상 가능성을 차단하는 제도적 장치가 선결돼야 한다. 가스산업의 경쟁도입과 민영화 역시 국민의 정부 때 수립된 계획을 전면적으로 재추진해야 한다.
철도산업은 철도시설공단은 공기업형태를 유지하되, 철도운영부문은 단계적으로 민영화해야 한다.
현재 수자원공사와 지방자치단체가 담당하고 있는 상ㆍ하수도사업의 경우 사업의 민간위탁과 경쟁을 통해 자연스럽게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밖에 방송산업에 대한 민영화도 고려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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