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체코, 에스토니아 등 동유럽 중심의 구 공산권을 중심으로 하는 9개국이 21일 회원국들간의 자유로운 통행을 보장하는 쉥겐 조약(국경개방 조약)에 따라 국경을 완전 개방하면서 유럽 지역에서 범죄 증가와 난민 유입 등의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21일 0시를 기해 발표된 이들 9개국과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기존 회원국 15개국의 국민들은 국경에서 여권 검사 절차 없이 자유롭게 상대국을 오갈 수 있게 됐다. 360만㎢의 광활한 유럽 지역에서 4억 인구의 통행이 완전히 자유로워진 것이다. 한국 등 해외 관광객도 쉥겐 조약 당사국 중 1개국에서 비자를 받으면 어느 지역이든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날 새벽 폴란드, 체코 등과 국경을 맞댄 독일 소도시 즈빅카우에서 도널드 투스크 폴란드 총리, 미렉 토풀라넥 체코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기념 행사를 갖고 “우리는 검문 철폐라는 형식적 절차를 없앤 것이 아니라 유럽인의 염원인 자유와 평화를 쟁취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공식적인 찬사와 의미 부여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서유럽 회원국들은 긴장과 우려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다. 사법 행정 체계가 미흡해 불법 체류자가 적지 않은 동유럽에서 취업 등을 목적으로 서유럽으로의 대이주가 시작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체코의 프라하 등 동유럽 대도시에는 국외 추방자와 난민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가 21일 보도했다. 프라하에 단기 여행 비자로 입국해 7년째 영어 강사를 하고 있는 미국인 로버트 해너월트씨는 “불법 체류를 적발당한 적이 한번도 없다”면서 “물가가 싸고 영어 강사 일자리도 구하기 쉬운데다 이번 조약 발효로 서유럽 여행에도 제한이 없게 됨에 따라 미국인 입국자들이 부쩍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이들 9개국은 2004년에 조약에 가입했음에도 국경 개방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번 조약 발효는 이들 9개국이 쉥겐 조약 집행 위원회가 요구해온 경찰력 강화 등의 개선 조치를 이행함에 따라 이뤄진 것이다. 이를 의식한 듯 체코의 블라디미르 렙카 내무부 장관은 이날 “2007년 한해 동안 4,000명의 불법 입국자를 추방했다”면서 해외 거주자에 대한 검색을 강화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약 발효로 장기적으로 유럽 역내의 교류가 확대되고 교역과 관광이 활발해지는 등 역내 경제가 활성화하겠지만 난민 유입과 범죄 증가 등의 부작용을 해소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쉥겐 조약은?
1985년 룩셈부르크의 소도시 쉥겐에서 벨기에 프랑스 독일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포루투갈 스페인 등 7개국이 맺은 '국경개방' 조약. 유럽연합(EU)의 한 회원국이 EU 회원국 이외의 국가에게 발급해준 비자를 다른 회원국들이 인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그리스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 8개국도 조약에 따라 순차적으로 국경을 개방했다. 21일 체코 에스토니아 헝가리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몰타 등 9개국이 국경을 개방해 모두 24개국이 유럽 역내에서 국경을 개방했다.
이민주 기자 m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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