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ㆍ송태욱 옮김 / 열린책들 발행(전2권)ㆍ392, 384쪽ㆍ각권 7,800원
한국 출판시장을 풍미하고 있는 일본 현대소설을 놓고 부박함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지만, 1870년대부터 1945년 패전까지 일본 근대소설이 보여준 문학적 성취엔 별다른 이견이 없을 성싶다.
다니자키 준이치로(1886~1965)는 모리 오가이, 나쓰메 소세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가와바타 야스나리, 다자이 오사무 등과 더불어 이 시기를 선도했던 작가다.
등록금이 없어 도쿄제국대학에서 퇴학 당했던 24세 때부터 79세로 타계하기 직전까지 창작을 멈추지 않았던 그는 국내에도 소개된 <치인의 사랑> <열쇠> 와 <미친 노인의 일기> 등의 대표작을 통해 독특한 에로티시즘의 미학을 구축했다. 미친> 열쇠> 치인의>
당국의 검열로 연재나 출판을 금지 당한 것도 여러 차례였다. 삶도 다르지 않았다. 세 번 결혼했고 분방하게 여성을 편력했다. 1930년엔 10세 연하의 부인을 동료 문인에게 양도한다는 합의문을 신문에 게재, 사회적 충격을 주기도 했다.
1944~48년에 걸쳐 완간된 장편 <세설> 은 다니자키가 평생 일관되게 추구했던 성적 모티프에서 한발 비켜서 있다. 1935~41년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엔 오사카의 몰락한, 하지만 여전히 기품있는 상류 계층의 네 자매가 등장한다. 세설>
서른 살을 꽉 채운 중년-당시 기준으론 30대 이후 여성을 일컬었다-인 셋째 유키코의 혼담을 중심으로, 기혼 여성인 두 언니와 자유연애를 하는 막내의 이야기가 극적 사건 없이 잔잔하게 진행된다.
1920년대 미국에 대해 <위대한 개츠비> 가 그랬듯, <세설> 은 세계 전쟁에 깊숙히 발을 담궈가는 제국주의 일본의 평온한 일상, 특히 간사이(關西) 지역 특유의 풍속을 세세하게 살려낸다. 세설> 위대한>
오히려 남성 작가이기에, 그것도 일평생 여성을 숭배하고 관찰해온 다니자키이기에 가능했던, 여성의 일상에 관한 정교한 묘사는 700여쪽 분량의 이 작품을 지루함 없이 읽어내도록 만드는 힘이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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