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루오카 이츠코 지음ㆍ홍성태 옮김 / 궁리 발행ㆍ228쪽ㆍ1만원
일본은 돈이 많은 나라다. 그 점이 풍성한 삶과 연계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한 나라다. 1인당 GNP로 보자면 일찌감치 1986년에 미국을 따라 잡았지만 일본 사람들은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
책은 멀고도 가까운 이웃, 일본의 가계부와 사회지표를 시시콜콜 나열하면서, 진정한 풍요와 행복은 어떤 모습이 돼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일본인들은 만성적 불안에 사로잡혀 산다. 전체5%의 부자가 절반이 넘는 재화를 소유한다는 사실, 막대한 불로소득으로 야기된 극심한 양극화는 일본인들의 영원한 숙제다.
자식들의 과외비를 위해 부모는 기꺼이 부업에 나선다. 재테크와 머니게임을 삶의 안전판으로 삼고 사는 지금 한국의 모습은 일본의 과거와 닮아 있다고 책은 지적한다.
모든 것은 제 2차 세계대전으로 비롯됐다. 피폐한 상황 속에서 허리띠를 졸라맨 덕분에 외형은 민주사회를 띠었지만, 경제 복원의 원동력을 전통적 희생 정신에서 구한 나머지 민주주의의 원칙은 깡그리 무시됐다는 것이다. 상자나 다름없는 15㎡의 임대 방에서 살아야 하는 일본 샐러리맨들의 처지는 일본식 자본주의의 귀결이라는 것이다.
책은 경쟁에서 뒤쳐진 약자도 끌어 안을 수 있는 공존의 원칙을 제시한다. 현실적으로 그것은 사회 보장에 대한 재정 지출을 삭감하는 정책이며, 보다 직접적으로는 군비 확대의 꿈을 버리지 못하는 일본 보수당에 대한 비난이다.
책의 논점은 저자의 다양한 경험에서 우러나왔다. 1980년대 중반 1년 간 서독에서 살며,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체험할 수 있었다. 당시의 경험이 일본식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 것이다. 두터운 사회 자본에 입각한 사회보장 제도를 해법으로 제시하는 것 역시 그 연장선상에 놓인다.
그는 자본을 가진 자들은 땅값을 천문학적으로 올리고 가난한 근로자들로부터 주거공간을 빼앗으며, 개인은 회사형 인간을 당연히 여기는 사회 속에서 고통 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잘못된 풍요의 길을 걷고 있는 일본사회를 근본적으로 뜯어 고쳐, 국민의 삶의 질을 보장할 수 있도록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초판이 나온 지 18년이 됐지만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을 만큼 책에 대한 공감은 깊다.
저자 데루오카 이츠코(69)씨는 경제적 지식을 생활에 녹여 쓴 일련의 생활 경제학적 저서들로 현지에서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옮긴 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홍성태 교수는 “한국도 역시 잘못된 기형 국가의 길을 걷고 있다”며 “일본의 사례를 우리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경계했다.
극심한 부의 편중 상황에서, 복지문제만 나오면 기업이 주머니를 닫는 20년전 일본의 현실은 바로 지금의 한국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