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脫) 정치화의 흐름 속에서 진보ㆍ개혁 성향 시민사회단체의 영향력도 계속 줄고 있다. 새로운 목표와 방향을 정해야 한다.”(한국여성단체연합 남인순 공동대표)
20일 오전 진보ㆍ개혁 성향 시민사회단체들이 17대 대선 평가와 BBK 특검에 대한 입장 발표를 위해 서울 향린교회에 모였지만 분위기는 무겁고 어두웠다. 보수의 압도적 승리라는 17대 대선의 충격적 결과는 이들에게 향후 진로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숙제로 남겼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 사회 전반의 민주화 움직임 속에 그 정치적 영향력을 계속 확대해왔다. 특히 2000년 총선연대의 낙선 운동, 2002년 효순ㆍ미선양 추모 촛불시위를 주도했고 김대중ㆍ노무현 정부에서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때부터 인력 공급처 역할을 하며 실질적인 권력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보수 정권의 탄생과 함께 진보ㆍ개혁 단체들은 1998년 이전의 냉엄했던 상황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대선 결과에 대한 시각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17대 대선 결과에 대해 “무엇보다 노무현 정부의 실정 때문”이라면서도 “이를 제대로 비판하지 못한 진보ㆍ개혁 성향의 시민사회단체도 잘못이 크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을 지낸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는 “대중에게 왜 진보적 정책이 더 의미가 있고 옳은 지를 설득할 수 있는 논리 개발에 실패한 탓이 크다”며 “진보ㆍ개혁 하면 집회 시위 이미지만 부각되다 보니 탈 정치화 하는 대중은 이를 식상해 했고, 진보 계열은 정부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의제를 만들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다”고 비판했다.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지도위원을 지낸 정대화 상지대 교수는 “노무현 정부는 많은 위원회를 만들어서 학계와 시민사회의 의견을 반영하려 했지만 이 노력이 정치와 만나면서 엇박자가 났다”며 “정치인들은 새로운 진보와 개혁을 어떻게 끌어갈 지 정리된 견해가 없었는데, 특히 386세력들이 그랬다”고 지적했다.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 운영위원장인 송준호 안양대 교수도 “노무현 대통령의 개혁은 일방적이었다”며 “국민은 먹고 살 길이 막막한데, 정부는 진보만을 위한 진보를 외치며 자제력을 보이지 못했고 국민들은 외면했다”고 진단했다.
시민사회단체의 향후 행보는
서울대 김세균 교수는 진보ㆍ개혁 성향의 시민사회단체들도 보수 진영이 득세하는데 한 원인을 제공했다며 이번 대선을 자기 쇄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이명박 후보의 당선은 노무현 정부가 가져 온 민생파탄, 사회 양극화의 결과”라며 “노무현 정부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시민사회단체 역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노무현 정부를 비판했어야 할 진보 진영 인사들이 정부에 참여하면서 혼란을 빚었다”며 “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가지고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시민사회단체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 진 셈”이라고 평가했다.
정대화 상지대 교수는 “19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가 이뤄지기 시작한 후 진보ㆍ개혁 세력은 진보와 개혁을 상품화 해서 소비자(대중)가 구매 가능한 상품으로 만드는데 성공하지 못했고, ‘민주화가 밥 먹여주냐’ ‘개혁은 돈 안 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며 “새로운 비전과 전망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경실련 위정희 입법국장은 “진보나 보수라는 이념의 잣대가 아닌, 일한 만큼 얼마나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사회인지가 중요하다”며 “시민이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을 지에 초점을 맞추고, 가장 합리적인 정책을 만드는 것을 기본 방향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k.co.kr이현정기자 agada2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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