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은 올해 세계 최대 중소형 건설장비업체 '밥캣'을 49억달러에 인수했다. 국내 기업의 해외 인수ㆍ합병(M&A) 사례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이는 단순히 '최대'라는 수식어를 넘어, 국내 기업이 세계 M&A 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두산 M&A의 총 사령탑은 고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의 5남인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부회장이다. 그는 평소 "자체적으로 기술을 개발해 성장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M&A는 이런 시간과 에너지를 크게 줄여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라는 말을 자주한다. 그래서인지 두산 M&A부서(CFP팀)에는 인수 대상기업 리스트가 꽤 축적돼 있다고 한다.
M&A는 이제 큰 흐름이다. 건빵 제조업체로 출발한 유진그룹(회장 유경선)은 올해 스펀지처럼 기업을 빨아들이며 재계 30위권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2월 로젠택배를 시작으로 서울증권, 한국통운에 이어 최근 전자제품 유통업체 하이마트까지 인수하면서 재계의 '무서운 아이'로 떠올랐다.
M&A로 성장해온 STX그룹은 올해도 어김 없이 사고(?)를 쳤다. 현대중공업 등 국내 대형 조선업체들이 신(新)성장동력으로 꼽아온 크루즈선 제작을 위해 내부 준비작업을 하는 사이, STX는 원천기술을 보유한 세계 2위의 크루즈선 조선소 '아커 야즈'를 전격 인수했다. M&A가 왜 필요한지를 명확히 보여준 사건이다.
효성그룹(회장 조석래)도 중국 변압기 회사와 독일 필름 생산업체, 미국 타이어코드(타이어 보강재) 공장을 잇따라 인수하는 등 왕성한 소화력을 자랑했다. 한화그룹도 11월 한화L&C(옛 한화종합화학)가 미국 자동차 부품업체 '아즈델'을 사들이는 등 활발하게 움직였다.
4대 그룹도 M&A전에 가세했다. 삼성은 비메모리 사업 부문을 강화하기 위해 이스라엘 비메모리(CMOS Image Sensor) 설계 전문업체 '트랜스칩'을 인수했다.
규모는 작지만, 삼성이 13년 만에 처음 M&A시장에 뛰어들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현대ㆍ기아차그룹도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증권사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
SK그룹은 중국 이동통신시장 진출을 위해 SK텔레콤이 차이나유니콤에 1조원 가량을 투자했다. LG그룹 또한 하이닉스반도체 인수 후보로 거론되는 등 M&A '상비군'으로 대기 중이다.
내년 M&A시장에는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대어(大魚)들이 잇따라 선보일 예정이다. 최대 물류업체인 대한통운을 시작으로, 대우조선해양, 현대건설, 하이닉스반도체 등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어 그 어느 해보다 인수전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박기수 기자 bless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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