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진 법무부 장관이 17일 노무현 대통령의 ‘BBK 재수사 지휘권 발동 검토’지시를 사실상 거부하고 BBK 특별검사법을 수용키로 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검찰 수사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됐다.
홍만표 법무부 홍보관리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검찰 수사에 대한 장관의 신뢰는 과거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BBK 사건 수사결과 발표 뒤인 11일에도“검찰 수사를 믿는다”고 말하는 등 일관되게 검찰 수사를 지지해 왔다. 따라서 정 장관으로서는 노 대통령의 ‘지휘권 발동 검토’지시를 이유로 기존 입장을 단숨에 바꾸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분석된다. 재수사 지시를 할 경우 뒤따를 검찰 내 반발과 사기 저하도 고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가 16일 긴급 소집한 간부 회의에서 입장을 정하지 못한 것은 검찰의 수사결과에 대한 자신감에도 불구, 국민의 절반 이상이 수사결과를 믿지 못한다는 현실 때문이었다는 후문이다. 수사가 완벽했다 해도 국민의 절대적 신뢰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검찰 조직도 보호하고 수사 신뢰도 회복하는 방안을 찾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회의에서는 지휘권 발동 지시와 특검을 모두 거부하자는 강경 입장에서부터 특검 수용, 재수사 지휘권 발동 등 여러 의견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수사팀은 대검을 통해 “계좌추적, 과학적 검증 등을 통해 도출한 수사결과인 만큼 자신이 있다”는 의견을 냈다.
결국 법무부의 ‘재수사 거부, 특검 수용’은 기존 검찰 수사에 대한 신뢰를 지키면서 수사의 공정성 시비를 불식시키겠다는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만의 하나 특검이 기존 수사를 뒤집는 결과를 내놓는다면 검찰은 ‘정치 검찰’이라는 오명과 함께 걷잡을 수 없는 신뢰 추락을 감내해야 한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16일 밤 전격적인 특검법 수용이 법무부의 어깨를 가볍게 해준 것은 물론이다. 이 후보가 자신을 겨냥한 특검법을 수용한 마당에 검찰에 대한 재수사 지시는 불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검찰이 아무리 객관적 수사결과를 내놓아도 믿지 않는다면 차라리 특검을 통해 검찰 신뢰를 회복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상진 기자 oko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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